서민들의 '희망 금융'…폐광촌을 버티게 하는 작은 불씨

‘미소금융 강원 태백법인’ 13년째 버텨

전국 27곳 법인 중 가장 열악한 환경

고령화·폐업 일상화·10만 인구 속 '기적'

태백시 황지동의 외진 곳에 자리한 미소금융 강원 태백법인 입구. 서민들이 찾아오기가 쉽지 않은 위치다.(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태백=뉴시스]홍춘봉 기자 = 제도권 금융이 등을 돌린 그 자리에서, ‘미소금융 강원 태백법인(태백법인)’이 13년째 서민들의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황지, 고한, 사북, 영월…이름만 들어도 석탄산업의 그림자가 진하게 깔린 도시들. 인구는 줄고, 상권은 쇠락하고, 폐업과 신용불량은 일상이 됐다.

그 척박한 삶의 풍경 한가운데,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는 작지만 단단한 조직이 있다. 태백법인.

태백법인은 지난 2012년 7월, 강원랜드 출연금 20억원으로 설립됐다. 설립 목표는 단 하나. 은행에서조차 대출받지 못하는 저신용·무담보 서민들에게 금융의 숨구멍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자라도 갚겠다는 사람들, 병원비나 장사 밑천이 급한 사람들, 어디도 기댈 데 없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이 여기다.” 태백법인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13년간 미소금융 태백법인은 총 2475건, 누적 237억원의 대출을 실행했다. 월 평균 2억원, 연 20억원 수준. 대부분 500만~10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이며, 수혜자는 기초생활수급자, 영세 자영업자, 법인택시 기사 등 오직 ‘서민’이다.

그러나 이 대출이 단순한 금전 거래가 아님은 숫자 너머의 사정들이 말해준다.

대출자 중 100명이 넘는 이들이 이미 파산 또는 개인회생 상태로,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회수 불능 대출 규모는 4억원을 넘었다.

“이자를 한 푼도 안 내고 잠적한 사람도 있습니다. 야반도주였는지도 모르죠.” 현장 직원의 말은 씁쓸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래도 해볼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라는 공동체적 연민이 담겨 있다.

설립 초기, 태백법인은 직원 5명(대표 포함)이 비전문 인력으로 시작했고, 서민금융진흥원의 지원금도 월 500만원에서 매년 100만원씩 줄더니 4년 만에 결국 끊겼다.

설립 5년 만에는 대출저조와 운영난 등으로 법인 해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다시 서민을 위해 문을 열었다.

현재 운영진은 단 3명. 대표 1명과 직원 2명이 전부다. 운영 재원은 오직 대출 이자 수입뿐. 하지만 금리는 연 4.5%에 불과하고, 회수율은 해마다 악화되고 있다.

수익이 없어 직원 인건비조차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금도 사무실이 외지고 월세는 비싸다. 태백시에 공공건물 저가 임대를 요청했지만 아직 답이 없는 상태다.”

태백미소금융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달 30일 태백시 황지동 미소금융 강원 태백법인을 찾아온 한 시민이 대출상담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판매 및 DB 금지

6월 현재, 회수 중인 대출은 780건, 총 50억원 규모. 적자와 회수불능의 늪에서 태백법인은 묵묵히 버티고 있다. 그리고 버텨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이곳의 대출은 단순히 돈이 아닌, 절박한 삶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하위 20%, 사채와 다른 금융권의 부채로 힘들어 하거나 담보도 없는 사람들.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그들은 문을 두드린다.

누군가는 병원비가 없어서, 또 누군가는 일터로 나가기 위해 중고 트럭을 사기 위해.

최동길 태백법인 대표는 “이곳은 사람을 살리는 금융이기에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다”며 “미소금융 대출을 통해 재기하는 서민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태백미소금융은 대한민국 27개 미소금융 지역법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지역에서 가장 집요하게 버텨온 법인이다.

폐업·고령화·인구 감소라는 3중고에 짓눌린 도시(3개 시군 인구 10만) 속에서, 이 작은 조직은 여전히 서민을 위한 ‘기적’의 금융을 만들어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