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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항왜 김충선<30>첫번째 살인의 기억

등록 2011.02.19 00:21:00수정 2016.12.27 21: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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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유광남 글·황현모 그림  제3화 어린 살인자 30회  사야가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엉거주춤 화승총을 넘겨받았다. 그렇지만 상대의 애원을 절대 수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관련기사 있음>

【서울=뉴시스】유광남 글·황현모 그림

 제3화 어린 살인자 30회

 사야가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엉거주춤 화승총을 넘겨받았다. 그렇지만 상대의 애원을 절대 수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난 절대 쏘지 않을 작정입니다.”

 “두…려우냐?”

 “…?”

 “사람을 죽이는 일이 두렵냐고 물었다.”

 사야가는 조선인을 자칭한 토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잠시 후면 현실의 모든 욕망과 미련만을 남겨두고, 영혼 없는 육신의 껍데기로, 한 구의 버려질 시체가 될 사내를 그렇게 들여다 본다.

 “내가 두려운 건 마음이 상하는 겁니다.”

 토다는 눈앞의 소년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순식간에 눈치 채고 있었다. 사람의 폐부를 깊숙이 관조(觀照)하는듯한 시선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의 마음이 상하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만 넌 내가 지금 당장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을 혹 아느냐?”

 사야가는 그의 표정과 상처에서 뿜어지는 피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몰라요… 모릅니다.”

 “그래. 그런… 거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거다. 타인의 아픔 따위는 절대 고려되지 않는 것이야.”

 사야가는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 아니, 추정이 아니라 그건 상당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 손에 박혀버린 가시 하나가 다른 사람이 당한 몇 곱의 상처보다도 더욱 거슬리고 아프다.

 “넌 나의 살인을 목격했지?”

 사야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7년 전에 바닷가 갯벌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싸움을 어찌 잊을 수가 있었겠는가. 사람이 반으로 갈라지고, 토막 나며 목이 잘려 나가는 현장은 어린 사야가에게 충격 그 이상이었다.

 “그들에게도 자식이 있고, 부모 형제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되면 반드시 그 언젠가는 내 목숨도 내 놓아야 하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런 것을 사야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어머니로부터 학습하던 사람의 도리를 잠깐 떠올렸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예의를 아는 것이다’고 어머니 수연은 강조했다. 

 “나는 지금 너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건….”

 “제발 날 죽여다…오. 약속한대로 여자를 안겨주마. 이 거래는 우리 둘 다에게 이롭다. 난 편안한 안식을 찾게 되고… 넌 진정한 사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며 또 좋은 여자를 얻게 되는 것이니까.”

 “나… 나는 원하지 않아요. 이런 거래… 싫어요!”

 “그 아이의 이름은 마오(真央)… 정난사(靖蘭寺)에 머물고 있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토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유일한 혈육이다. 아주 예쁜 아이다. 별님처럼, 달님처럼… 이제 난 그 아이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고… 돌 볼 수가 없구나.”

 사야가는 과거의 단편적 기억 속에서 바닷바람에 울리던 아기의 울음소리를 떠올렸다. 맑고 순수한 아기의 울음소리.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날 죽이고 진정한 사무라이로 입문하는 거다. 넌 이미 그럴 나이가 됐어. 언제나 첫 번째 살인은 기억에 남게 되지. 내 유언도 너의 가슴에 생생히 새겨질 것이고!”

 토다는 화승총의 총구를 입안으로 우겨 넣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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