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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찰나' 이진엽 "모래 위 놀이·명상…함께 기쁨"

등록 2026.09.22 14:50:50

배우와 관객이 모래 위 그림 그리는 관객 참여형 공연

2026 SPAF 참가작 10월 17~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찰나의 찰나' 연출 이진엽.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찰나의 찰나' 연출 이진엽.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낯선 사람들이 한 무대에 올라 함께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 남긴 흔적은 다른 사람의 흔적과 만나 뒤섞이고, 이내 사라진다.

이진엽 연출이 '찰나의 찰나'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지는 모래를 통해 서로를 온전히 마주하고 섬세하게 소통하는 순간을 그려낸다.

22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만난 이 연출은 '찰나의 찰나'에 대해 "만들고 사라지는 모래의 흔적을 따라가며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놀이와 명상이 공존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2026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협력예술가인 이 연출의 신작 '찰나의 찰나'는 다음 달 17~1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연출과 덴마크 예술가 헬레 호브가 공동 연출을 맡았다.

작품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빗자루로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며 만들어가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초반에는 두 명의 배우가 모래를 움직이는 여러 방법을 제안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은 자유롭게 자신만의 흔적을 만들어가게 된다.

이 연출은 "계속 변화하는 모래 이미지를 따라가면서 머릿속 생각을 비우기를 원한다.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창의성, 유희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초반에는 관객이 무대 위에 올라가면 타인의 시선이 느껴져 '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모래에 몰입하다 보면 그게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정해진 답을 찾지 않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해요."

작품은 10여 년간 모래를 활용한 작업을 이어온 호브와의 만남에서 출발했다. 호브는 검은 돌 위에 모래로 그림을 그리며 삶의 유한성과 현재에 집중하는 공연을 선보였고, 이 연출은 이를 더 큰 무대로 확장해보기로 했다.

이 연출은 "모래 그림이 계속 사라지기 때문에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찰나'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이진엽 연출 '찰나의 찰나' 공연 사진. (사진=Kristine Zipfel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진엽 연출 '찰나의 찰나' 공연 사진. (사진=Kristine Zipfel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공연에는 배우 두 명과 관객 200여 명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간다. 기존 객석을 비우는 대신 무대 위에 객석을 만든다. 이번 공연이 열리는 해오름극장이 대극장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다소 파격적인 결정이다.

이 연출은 "나에겐 의미 있는 공연"이라며 "대극장 공연을 보러 가면 객석마다 티켓값이 다르지 않나.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대극장에서 공연하게 되면 다 같이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고 웃었다.

무대 위에 객석을 만드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객석을 비워둔 채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 풍경 자체가 그가 추구해온 관객 참여형 공연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빈 객석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여러분은 객석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무대에 올라와서 같이 해야한다' 말해주는 느낌이거든요."

2009년 공연예술단체 '코끼리들이 웃는다'를 창단한 이 연출은 당초 영국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러다 극장을 찾아오는 사람보다 평소 공연을 접하지 않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공연에 관심을 두게 됐고, 커뮤니티와 장소성, 관객 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게 됐다.

이 연출은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재개발이나 복지 사각지대 같은 문제들을 계속 마주하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연에서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관객 참여가 중요했던 건 제 공연이 텍스트 기반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언어가 아닌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만들다 보니 장소성, 커뮤니티, 관객 참여가 필요했죠."
'찰나의 찰나' 연출 이진엽.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찰나의 찰나' 연출 이진엽.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표작 '물질'도 그 연장선에 있다. '물질'은 해녀의 삶을 소재로 수조 속 퍼포먼스를 통해 삶과 죽음, 경계의 감각을 읽어내는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지난 7월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도 참여했다.

해외 공연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관객들의 반응도 확인했다. 아비뇽에서 5세 아이부터 80~90대 관객까지 공연을 지켜보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파리에서 단체로 관람을 온 대학생들은 공연을 보고 펑펑 울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 연출은 "시작은 한국적인 이미지와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공연을 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분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려던 것이 국적을 떠나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걸 확인하게 됐다"고 했다.

'찰나의 찰나'에서 그가 전하고 싶은 것은 결국 연결이다. 이 연출은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우리가 함께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고 바랐다.

"공연장 밖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경계하지만, 공연장 안에서는 마음을 여는 게 더 쉽잖아요. 낯선 사람들과 공동의 무언가를 해본다면 나중에 그 경험을 더 그리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낯선 사람과 가깝게 마주해보는 경험과 연결감을 주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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