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이슈진단 '日 원전 폭발…한국은 안전한가'-강진·쓰나미 사고로 방사능 누출…식품서도 검출돼

【후쿠시마(일본)=AP/뉴시스】일본 동북부 강진 7일째인 17일 후쿠시마현 다이이치 원전의 모습이 위성사진으로 보이고 있다.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동북부 지역 6개 현을 강타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에 이어 높이 10m가 넘는 쓰나미가 밀려왔다. 미야기현 앞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는 불과 수분 만에 해안가 도시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갔다. 사망∙실종자만 1만9000명선에 이를 것으로 잠정 추산하고 있다. 전후 일본 최대의 재해였다.
내륙 깊숙한 마을까지 폐허로 만든 쓰나미가 잦아든 다음에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진앙지로부터 150㎞ 떨어진 후쿠시마현 후타바(雙葉)군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가 타격을 받아 방사능이 누출된 것이다. 1971년 가동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6기의 경수로형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으며, 발전용량은 478GW(기가와트)로, 세계 14위 규모이다.
일본 정부는 13일 후쿠시마 제1, 제2 원전 반경 20㎞ 이내 주민 21만 명에 대해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 이어 15일에는 반경 30㎞ 이내 주민들에게 대피를 명령했다. 제1원전 남쪽 11㎞에 위치한 제2원전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원자력 발전은 핵연료봉과 핵분열 속도를 제어하는 제어봉이 들어있는 원자로 안에서 물을 끓여 증기를 발생시키고, 그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원리이다.
원자로가 정상 가동되면 원자로 내의 온도는 수백도 정도지만 물(냉각수)이 공급되지 않으면 핵연료봉의 온도가 섭씨 2000~3000도까지 올라가 연료봉을 감싼 피복이 녹아 내리고, 고온에 의해 다량의 수소가 발생한다.
쓰나미 다음날인 13일 오후 3시36분. 후쿠시마 원전 1호기에 냉각수 공급이 중단됨으로 인해 원자로 내부에 엄청난 열이 발생했고 노심이 녹으면서 대량의 수증기와 수소가 발생해 격납고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 격납고 폭발을 막기 위해 수소를 빼냈으나, 이 수소가 격납고를 보호하는 건물 내부에 갇혀있다가 인화성 물질과 접촉해 폭발하면서 격납고 건물의 상부 외벽이 날아갔다. 이것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시작이었다.
◇평상시 수백 배의 방사능 물질 유출
철골 콘크리트로 된 외벽이 파괴되면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고, 이튿날 3호기에서도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14일 오전 후쿠시마 원전 주변지역은 평상시의 800배에 이르는 방사능이 검출됐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파견된 미국 항공모항 로널드 레이건 호 승조원 17명이 약 한 시간 만에 한 달치 분량의 방사능에 노출됐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120㎞ 떨어진 곳에서도 정상치의 200배 수준인 21mSv(밀리시버트∙1μ㏜마이크로시버트의 1000배)의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일상에서 자연적으로 맞는 방사선량은 연간 1mSv(밀리시버트)이다. CT촬영 한번에 6.9mSv, X레이 한번에 0.05mSv 정도이며, 원자력발전소 근무자는 대략 연간 50mSv 정도를 맞는다. 연간 합계 100mSv를 맞으면 건강에 영향을 받게 되며, 500mSv이면 백혈구 감소, 100mSv이면 구토증상, 5000mSv이면 백내장과 피부홍반 발생, 7000~1만mSv 이상이면 사망에 이른다.
위태위태했던 2호기와, 4호기는 15일 역시 수소폭발로 외벽에 큰 구멍이 뚫리거나, 외벽이 뼈대만 남기고 날아갔다. 연이은 폭발로 인해 다량의 방사능이 유출됐고, 16일 후쿠시마현 재해대책본부는 “검사 결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약 60㎞ 떨어진 후쿠시마시의 수돗물 1㎏에서 요오드가 177베크렐, 세슘이 58베크렐 검출됐다”고 오염사실을 밝혔다. 이 수치는 일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정한 섭취기준인 물 1㎏당 요오드 300베크렐, 세슘 200베크렐에 못 미치는 수치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세슘은 대기 중에서 나트륨과 섞여 인체에 흡수되면 암이나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치명적인 물질로 작용한다. 반감기가 30년이나 되며 한번 인체에 흡수되면 잘 배출되지 않고, 농작물에 흡수돼 이를 섭취함으로써 2차 피폭될 우려도 높다.
일본 당국은 뒤늦게 운영자인 도쿄전력의 대응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사고처리 전면에 나서 결사대 50명을 비롯해 자위대 수백 명을 투입했다. 이후 헬기와 물대포로 냉각수를 주입하는데 겨우 성공했고, 냉각펌프를 작동시킬 전원을 끌어와 연결에 성공한 21일 오후에서야 원자로를 통제할 수 있는 발판을 어렵게 마련했다.
◇안이한 대처가 문제 키워
원전 상황이 악화되고 방사능 물질 누출사태를 막지 못한 이유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안이한 대응 때문이다. 원전을 통제하지 못한 건 명백한 인재였다. 수조원짜리 원자로가 아까워 포기하지 못한 게 근본 원인이다. 과감하게 버리고 신속하게 극단적인 방법을 썼어야 하는데, 미련을 갖고 매번 한발 늦게 대처하다 보니 최악의 상황 직전까지 몰렸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차분하고 치밀하긴 하지만 매뉴얼을 벗어나는 대응을 하는 데는 몹시 주저하고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국민성을 거론하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사고처리에 일본이 역량에 한계를 드러내자 미국도 본격 개입했다. 미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환경 문제로 규정하고 지원에 나섰다. 미 태평양군사령부는 화생방전에 대비해 고도로 훈련된 약 450명의 방사선 피해 관리의 전문가들을 일본에 파견했고, 국방부도 본토의 핵테러 대처 전문부대 요원 9명을 보내 사고수습을 도왔다.
한편 프랑스 원자력안전국장은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위험 정도를 체르노빌 원전폭발사고보다는 낮고,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보다는 더 높은 단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국제사회의 공조와 ‘최후의 결사대’ 투입 등 필사적인 노력으로 원자로가 폭발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으나, 원전 사고의 무서움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그 후유증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후쿠시마 인근을 비롯해 혼슈 지방에서 생산된 우유와 시금치 파 쑥갓 카놀라 누에콩 등에서 요오드와 세슘 등 방사능 물질이 검출돼 유럽연합(EU)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일본산 식품에 대한 검역을 강화했고, FAO(세계식량농업기구)와 세계보건기구(WHO)도 주시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각국은 일본에서 들어오는 식품에 대해 수입금지 또는 검사강화 조치를 내렸다. 국제사회는 일본 정부에 일본산 식품의 판매를 금지하라는 압력을 가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원전사고로 인해 애꿎은 일본 농민들만 방사능 물질 함유를 우려한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오랫동안 고통 받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세계를 경악시켰던 원전사고들
◇스리마일(TMI) 원전 사고=스리마일섬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도핀 카운티의 서스쿼해나 강에 있는 길이 3마일(약 4.8㎞)인 섬이다. 이 섬에 1974년과 1978년 90만kW급 원자력발전소 2기가 들어섰다. 1979년 3월28일 2호기의 냉각수 펌프가 고장나면서 증기 압력이 높아져 방사선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자 원자로는 온도가 급상승해 녹아내린 노심이 두께 1m의 격납용기를 뚫고 나오기 직전까지 갔다. 이로 인해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됐다. 당국은 방사능 피폭을 우려해 주변 주민 중 임신부와 아이들을 대피시켰는데, 이로 인해 미국 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현장을 방문해 “앞으로 미국은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스리마일 원전은 폐쇄되고, 그로부터 30여년간 원전 건설의 선두주자 웨스팅하우스사는 미국 내에서 일감이 없어 외국 원전 건설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체르노빌(Chernobyl)은 우크라이나 공화국 수도 키예프시에서 남쪽으로 130㎞ 지점에 있다. 이곳 원자력발전소에서는 후쿠시마원전과 같은 구조인 흑연감속 비등경수 냉각방식 100만 킬로와트짜리 원자로 4기가 운전 중이었다.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원전에서 20세기 최대이자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원인은 터빈발전기 관성력을 시험하기 위해 낮췄던 출력을 무리하게 높이다가 원자로가 폭주해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이어 핵연료가 순간적으로 파열, 원자로가 폭발했다. 31명이 죽고 피폭(被曝) 영향으로 1991년 4월까지 5년 동안에 7000여 명이 사망하고 70여 만 명이 치료를 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사성 물질이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에 낙하해 수십 년간 피해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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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20호(4월4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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