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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광 재현"…인텔 겔싱어 CEO의 야심은 실현될까

등록 2023.06.24 09:00:00수정 2023.06.24 09: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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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파운드리 앞세워 '반도체 제국' 재건 나서

겔싱어, '반도체 제국' 인텔 출신 엔지니어 '향수'

평가는 엇갈려…'IDM 2.0' 비전 업계 뜨거운 감자

[서울=뉴시스]패트 겔싱어 인텔 CEO. (출처=악시오스) 2021.10.18.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패트 겔싱어 인텔 CEO. (출처=악시오스) 2021.10.18.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우리는 반도체 산업을 아시아에 잃었다. 다시 가져오려면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강화를 통해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텔은 팻 겔싱어 CEO 취임 이후 파운드리 사업을 앞세워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아직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지만, 겔싱어의 야심찬 계획은 반도체 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겔싱어는 지난 2021년 2월 취임 직후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라면서 'IDM 2.0' 비전을 발표했다. 이는 파운드리 비즈니스를 담당할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사업부를 신설하고, 전 세계 각지에 생산 기반을 확보해 초미세 공정 경쟁에 다시 나서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당시 발표는 지난 2018년 파운드리 시장에서 물러났던 '왕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반도체 시장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인텔은 수십 년간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중심으로 업계 선두를 지켜왔으나, 모바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된 시장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서 파운드리 시장 주도권을 대만 TSMC와 삼성전자에 내줬다.

인텔의 실패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실패로도 여겨진다. 인텔이 반도체 분야 리더십을 상실하면서 애플 같은 기업들은 삼성, TSMC 등 아시아 칩 제조업체 쪽에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특히 미세공정 전환에서 뒤처져, 한 때 '반도체 제국'의 인텔은 매출 기준으로도 삼성전자, TSMC에 밀려났다. 치열한 경쟁 속에 수익성은 둔화하고, 잦은 신제품 출시 지연으로 신뢰의 위기까지 맞았다.

그러고 나서 2년4개월 뒤. 인텔은 'IDM 2.0'의 2단계 돌입을 선언했다. 반도체 제국의 재건을 선언한 겔싱어의 야심은 실현되는 것일까.

"반도체 명성 되찾겠다" 팻 겔싱어는 누구

겔싱어 CEO는 40년 동안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종사했고, 인텔에서만 32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그는 1962년생으로 고등학생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에 두각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대학에 진학하기도 전인 만 15세의 나이인 1979년에 인텔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그는 인텔에서 근무하면서 유연근무제, 장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대를 졸업했으며, 2년 뒤에는 스탠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겔싱어 CEO는 엔지니어 시절, 일명 '486 컴퓨터'라고 불리는 반도체 프로세서의 설계를 지휘했다. 인텔은 1985년 출시된 이 프로세서의 강력한 성능 덕분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겔싱어는 회사 성장에 대한 혁혁한 공을 세워, 2001년 인텔의 최고기술자(CTO)를 맡았다.

30대 후반에 내로라하는 반도체 인재들이 모인 인텔에서 다양한 반도체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기술 혁신을 이끈 것이다.

겔싱어가 평생 인텔에만 몸 담은 것은 아니다. 그는 2009년 회사를 떠나 데이터 저장장치 전문 기업 'EMC'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기도 했다. 이어 2012년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VM웨어' CEO, 2018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글루(Gloo)의 이사회도 이끌었다. 시스템반도체부터 메모리, 가상화 소프트웨어 등 컴퓨터 산업 전반을 두루두루 경험했다.

그러고 그는 인텔의 8번째 최고경영자(CEO)로 2021년 2월 취임했다. 그는 취임 이후 인텔이 누렸던 '반도체 왕좌'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그의 취임 일성도 "기술 발전의 모든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회사의 위대한 아이콘을 되찾아 다시 미래의 리더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 겔싱어가 취임 직후 발표한 'IDM 2.0'는 인텔의 부활을 이끌 핵심 전략으로 평가 받는다. 이런 가운데 인텔이 지난 21일 내년부터 IDM 2.0의 2단계 전략인 '내부 파운드리' 모델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히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반도체 제조 기술 관련 부문을 한데 묶어 '제조 그룹'을 출범시켜 비용·투자을 효율화하고 책임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데이빗 진스너 CFO(최고재무책임자)는"제조 그룹의 내년 연간 매출 중 인텔 내부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200억 달러(25조8800억원) 규모로 업계 2위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숨에 삼성전자를 제치고 TSMC에 이어 파운드리 업계 2위에 오르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발표가 인텔의 초미세 공정 개발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신호로 평가하고 있다. 인텔 7 공정을 시작으로 4년간 5개 공정을 실현한다는 1단계 목표가 상당 부분 진척되자 생산 부문 효율화로 비용 절감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엇갈린 평가…왕국 재건에 성공할까

겔싱어 취임 이후 인텔은 "달라졌다"는 평가와 "우려스럽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긍정적인 평가는 인텔이 '독불장군' 같던 면모를 벗어던졌다는 점이다.

인텔은 그동안 고집스럽게도 자산의 생산시설에서 자신의 설계자산만 이용해 칩을 설계해왔다. 인텔이 7나노 공정에서 한계에 부딪힌 것도 이 같은 '고립주의'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겔싱어 부임 이후 생산정책 기조가 타사와의 기술적 제휴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인텔은 지난 4월 암과 함께 인텔의 18A(옹스트롬·1A는 0.1나노미터) 공정을 활용해 차세대 모바일용 시스템온칩(SoC)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또 TSMC 등 선단 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외부 파운드리와의 협업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인텔의 야심찬 계획에도 아직은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일단 후발주자로서 TSMC, 삼성전자 등과 경쟁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이 거론된다. 최근 인텔은 폴란드 브로츠와프 후공정 라인(46억달러), 이스라엘 공장(250억달러)의 투자를 확정했고, 독일 마그데부르크(170억유로)와 아일랜드(120억유로) 등 추가 투자를 진행 중이다.

반면 인텔이 입지를 쌓아올린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은 경쟁사 AMD의 공격적인 확장으로 점유율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 반도체 생산 내재화 계획에도 의구심이 크다. 인텔은 최근 서버용 CPU 신제품 출시 지연으로, 압도적 시장 점유율이 흔들리며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 출시가 예정된 14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메테오 레이크'의 경우, 인텔이 '인텔 4 공정'을 적용해 생산하는 제품인데 상당 부분 TSMC에 의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4는 초미세 공정 시대의 문을 열 '열쇠'인 EUV(극자외선)를 인텔이 대량 생산에 처음 적용하는 공정이라는 점에서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인텔은 현재 공정 로드맵상 가장 개발 속도가 빠른 것으로 여겨진다. 인텔은 2025년에 1.8나노(18A) 파운드리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2025년 2나노 공정 양산을 계획 중인 TSMC나 삼성전자보다 한 발 빠르지만 업계에서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를 그리고 있는 이유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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