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야 합니다”…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의 30년 사명감[문화人터뷰]
1996년 개관 30주년 기념전…6일 개막
1만일 간 기획전 300회…잇단 해외 순회전까지
작가들과 '미술관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 전시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사비나미술관 개관 30주년을 맞은 이명옥 관장이 이재삼 작가가 그려준 초상화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6.02.0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2/05/NISI20260205_0021151715_web.jpg?rnd=20260205122806)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사비나미술관 개관 30주년을 맞은 이명옥 관장이 이재삼 작가가 그려준 초상화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6.02.0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버텨야 합니다.”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은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젊은 기획자와 전시장 운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지속성’을 꼽았다.
5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난 이 관장은 “아이디어나 의지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일관되게 계속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며 “결국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6년 ‘사비나 갤러리’로 문을 연 이후, 미술관으로 성장하며 지금까지 공간을 유지해온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제가 미술관을 닫아버리면, 그동안 여기서 전시한 작가들의 경력도 함께 사라지는 거예요. 그걸 제가 감당할 수 없었어요.”
이 관장은 미술관을 작가의 ‘이력’이자 ‘시간을 증명하는 장치’로 인식한다. 그는 미술관을 하나의 ‘학교’에 비유했다.
“갤러리 현대나 국제갤러리처럼 이름이 남아 있으면 작가의 이력도 설명이 되잖아요. 그런데 전시장이 사라져버리면, 이 사람이 무엇을 해온 작가인지 알 수가 없어요.”
실제로 그는 한 작가의 프로필에서 이미 사라진 전시장 이름들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공간의 지속이 곧 작가의 역사”라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사비나미술관이 전시를 ‘열었다–닫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이력과 시간을 함께 떠안는 과정으로 접근해온 이유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이 세 마리 개가 압도적인 박찬용의 '바라보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6.02.0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2/05/NISI20260205_0021151713_web.jpg?rnd=20260205122806)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이 세 마리 개가 압도적인 박찬용의 '바라보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6.02.05. [email protected]
‘사비나’라는 이름, 책임의 선언
‘사비나(Savina)’라는 이름을 내걸고 미술계에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전시 공간들은 대개 지명이나 시대 감각에 맞춘 이름을 내세우던 시기였다. 이 관장은 자신의 세례명을 미술관 이름으로 내걸었다.
“오히려 미술관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그 이름에 책임을 지고 싶었어요.”
‘사비나’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화가의 이름이자, ‘여왕’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 이름처럼 사비나미술관은 이후 한국 사립미술관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에게 ‘이름을 건다’는 것은 브랜딩이 아니었다. 전시를 여는 주체를 넘어, 그 이름 아래 축적될 시간까지 감당하겠다는 약속에 가까웠다.
이러한 철학을 담아온 사비나미술관은 2018년, 종로구 안국동 시대를 마감하고 은평구 진관로에 연면적 1740㎡, 5층 규모의 삼각형 대지 위 신축 미술관으로 재개관했다.
그리고 개관 30주년을 맞은 올해, 그 시간의 궤적을 되짚는 아카이브 전시를 선보인다.
![[사비나미술관]3층 김재홍, 안지산, 이흥덕, 강홍구, 함명수, 한진수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2/05/NISI20260205_0002056852_web.jpg?rnd=20260205134446)
[사비나미술관]3층 김재홍, 안지산, 이흥덕, 강홍구, 함명수, 한진수 *재판매 및 DB 금지
1만 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
1만 일은 한 사람이 태어나 서른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이다. 사비나는 그 시간 동안 한국 미술계에서 테마 중심 기획과 융·복합 전시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꾸준히 실천해온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열린 기획전만 300여 회에 달한다.
이번 아카이브 전시를 준비하며 이명옥 관장 스스로도 놀랐다고 털어놨다.
“돌아보니까, 나름 작은 역사가 있더라고요.”
1990년대 후반부터 사비나미술관은 셀피, 반려동물, 환경, 기후, 교과서 미술, 키스 등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한 전시를 잇달아 선보여왔다.
“왜 방학 때 전시를 안 하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교과서 미술전’, 기상청과 협업한 환경 전시, 대중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실험들은 모두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전시로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최근에는 한복·한옥·한글 등 K-콘텐츠와 전통문화를 현대미술과 접목한 해외 순회전도 이어가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이 주관하는 ‘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프로그램은 일본 시로타 화랑, 폴란드 바르샤바 와지엔키 왕궁박물관, 캐나다 한국문화원 등에서 순회 전시되며 한국 전통미의 깊이와 현대성을 함께 소개해 왔다. 현재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로의 확장도 추진 중이다.
![[사비나미술관]좌-홍순명, 포항1, 2016, 캔버스에 유채, 138 x 91cm 우-권여현, 신윤복-야금모행, 2004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2/05/NISI20260205_0002056854_web.jpg?rnd=20260205134541)
[사비나미술관]좌-홍순명, 포항1, 2016, 캔버스에 유채, 138 x 91cm 우-권여현, 신윤복-야금모행, 2004 *재판매 및 DB 금지
사비나의 기획들은 당시에는 즉흥적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것들은 하나의 시대 감각의 궤적으로 연결됐다.
“일부러 시대를 앞서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때그때 이건 지금 필요한 질문 같다고 느낀 걸 했을 뿐이에요.”
이 관장은 사비나미술관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개관전부터 지금까지, 사비나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시대성을 반영한 테마 중심 기획과 융·복합 전시를 일관되게 실천해 왔다는 점이에요. 동시대 사회·기술·문화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포착해 전시와 교육, 체험 프로그램으로 확장하며, 한국 사립미술관의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사비나미술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 국내 미술관 최초로 디지털 기술을 전시·교육·아카이브 전 영역에 본격 도입해 왔다.
QR코드 모바일 도슨트, VR 전시장, 버추얼 투어, 온라인 교육 콘텐츠 등은 관람객이 물리적 공간을 넘어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는 미술관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전통적인 미술관 운영 방식을 확장한 시도이자, 사비나가 줄곧 던져온 ‘지금 필요한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응답이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사비나미술관은 5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개관 30주년 기념전 '1만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 기자간담회 갖고 주요 전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2.0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2/05/NISI20260205_0021151714_web.jpg?rnd=20260205122806)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사비나미술관은 5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개관 30주년 기념전 '1만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 기자간담회 갖고 주요 전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6.02.05. [email protected]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이들은 사비나가 재조명하며 미술계에서 다시 존재감을 쌓아온, 이른바 ‘의리의 작가’들이다. 사비나미술관을 거쳐 각자의 언어를 구축해온 작가들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한자리에 펼쳤다. 대규모 공간에서 자신의 작업 세계를 마주한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시간과 선택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
강재현 학예실장은 “사비나미술관에서 15년간 일하며 느낀 가장 큰 특징은, 동시대 이슈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번역해 전시로 풀어내는 점”이라며 “미술관을 현실과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시대를 읽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순발력 있는 기획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작가들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소개하고 있다. 2026.02.05. pak7130@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2/05/NISI20260205_0021151718_web.jpg?rnd=20260205122806)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작가들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소개하고 있다. 2026.02.05. [email protected]
사비나, 이명옥… 초상화로 기록된 동행
이 관장은 “미술관과 작가의 관계를 협력의 차원을 넘어, ‘예술적 동지’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내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처음엔 망설였지만, 막상 꺼내놓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동시에 재밌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수의 작가가 현직 미술관장을 모델로 삼아 작품을 남긴 사례는 드물다. 이 초상화들은 지난 30년간 척박한 미술 환경 속에서도 작가들의 결정적인 순간을 함께하며, 그들의 이름과 시간을 미술계에 연결해온 한 미술관장의 책임과 사명에 대한 응답이다.
“미술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결국 작가의 시간을 버텨주는 일”이라는 그의 말은, 이 초상화들 앞에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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