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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명 앗아간 참사에도 국가재난대응 없었다[세월호 10주기]<상>

등록 2024.01.01 07:00:00수정 2024.01.01 0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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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좌초된 가운데 구조대원들이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이 여객선에는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4명과 교사 10명 등 승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다. 2014.04.16. (사진= 뉴시스DB)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좌초된 가운데 구조대원들이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이 여객선에는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4명과 교사 10명 등 승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다. 2014.04.16. (사진= 뉴시스DB)  [email protected]



세월호 참사가 2024년 새해로 10주기를 맞는다. 가족 곁에 돌아오지 못한 5명을 비롯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진실'과 함께 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고 육상에 거치하는 데에만 4년 넘게 걸렸다.

침몰 원인과 구조 실패 경위 등에 대한 수사와 정부 공식 조사만 9년간 총 9차례. 그럼에도 여전히 구할 수 있었던 생명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다. 그 사이 구조 실패의 직접 책임으로 형사 처벌된 해양경찰은 단 1명에 그치며 사법 절차가 일단락됐다.

흐르는 세월 속에 안전사회 건설 다짐도 점차 희미해져만 간다. 세월호 이후에도 미리 막을 수 있었던 대형 참사는 어김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 세월호가 남긴 가슴 아픈 교훈을 다시 짚어볼 때다. <편집자주>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하루 전 인천에서 출항해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부근 바다를 지나다 변침 시도했다.

3등 항해사의 지시대로 조타수가 지시한 '우현 5도 조타'가 이뤄졌지만 선체는 멈춤 없이 계속 오른쪽으로 선회했고 이내 왼쪽으로 기울었다.

오전 8시 49분 37초 이후 불과 14초 사이 세월호 선수 방향이 180도에서 243도까지 오른쪽으로 급선회, 선체는 22도에서 51도로 빠르게 기울었다.

배가 기울자 선내에서는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선원들은 선체가 눈에 띄게 기운 오전 8시 55분에야 제주 해상교통관제(VTS)센터에 조난 신고를 했다.

정작 중요한 승선원 퇴선 조치는 이미 4층 좌현 갑판까지 완전 침수된 직후인 오전 9시 59분에야 내려졌다.

열린 수밀문과 맨홀로 바닷물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적정 적재량보다 과적 상태였던 화물칸에서는 고박이 허술했던 화물 수백여 t이 한쪽으로 쏠리며 선체가 더욱 빠르게 기울었다.

오전 9시 45분까지 사고 해역에는 이미 해경 123정, 해경 소속 헬기 3대(511·512·513호)와 고정익 항공기(703호기)가 차례로 도착했다. 그러나 해경은 승객을 내버려둔 채 빠져 나온 선장을 비롯해 눈에 보이는 승객들만 구조했다. 선내 상황 파악도, 퇴선 유도 조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존자 중 절반 이상은 해경보다 사고 해역에 뒤늦게 도착한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된 것으로 집계됐다.

세월호는 기운 지 1시간 40분여 만인 오전 10시 30분께 완전히 뒤집히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진도=뉴시스】류형근 기자 = 16일 오전 9시께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남서방 1.7마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6852t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가운데 해경과 군당국이 헬기와 경비정, 특수요원 등을 동원해 수색을 하고 있다. 2014.04.16.  hgryu77@newsis.com

【진도=뉴시스】류형근 기자 = 16일 오전 9시께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남서방 1.7마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6852t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가운데 해경과 군당국이 헬기와 경비정, 특수요원 등을 동원해 수색을 하고 있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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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 부처였던 해양수산부·안전행정부는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고, 언론 보도로 안 청와대가 첫 공식 보고하고 대통령의 첫 지시가 내려질 무렵 세월호는 이미 급격히 가라앉고 있었다. 사실상 국가 재난대응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침몰 당일 스스로 빠져나오거나 구조된 선원·승객은 172명. 같은 해 11월 11일까지 210일 가량 실종자 수색이 펼쳐졌지만 유해만 수습했을 뿐, 추가 생존자는 없었다.

사고 해역과 가까운 진도 팽목항은 수색 기간 내내 유족들이 통곡과 절규 속에 수습된 희생자 유해를 맞으면서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 중 하나로 남았다.

세월호에 탄 총 476명(승객 443명, 선원·승무원 33명) 중 304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이 중 250명은 수학여행에 나섰던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희생자 중 5명은 끝내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목포=뉴시스] 이영주 기자 = 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추모식에 참석한 뒤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2023.04.09. leeyj2578@newsis.com

[목포=뉴시스] 이영주 기자 = 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앞에서 추모식에 참석한 뒤 선체를 둘러보고 있다. 2023.04.09. [email protected]



진실과 함께 바다 깊숙이 누워있던 세월호는 우여곡절 끝에 인양, 참사 1486일 만인 2018년 5월 10일에야 목포신항만에 바로 세워졌다.

이로써 참사 4년여 만에 침몰 원인 규명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체 조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체 곳곳이 잘려 나간 채 녹이 슨 세월호에서 복잡한 진실 퍼즐 조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후에도 진상 규명은 난관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일 "참사 이후 여러 차례 수사와 정부 조사가 있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다.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는지, 왜 (적극) 구조하지 않았는지를 정확히 모른다"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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