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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름에도 귀가 조치…10년째 국회에 '발목' 잡힌 교제폭력 규율법

등록 2025.12.25 06:00:00수정 2025.12.25 07: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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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피해자 의사 의존 구조 한계…법제화 시급"

현장에선 과잉 대응 우려도…경찰 "별도 규율법 필요"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의 항소심이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여성의당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24.07.17.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의 항소심이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가족을 비롯한 여성의당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2024.07.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전상우 수습 기자 = #. 지난 7일 늦은 오후 서울 성북구 일대에서 '남자친구에게 목을 졸렸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자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집 밖으로 뛰쳐나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남자친구를 형사 입건하지 않은 채 귀가 조치했다. 피해자 목 부위에서 뚜렷한 상흔이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현행법상 단순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수사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피해자 조사를 마친 뒤 피의자 소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피해자가 처벌 불원의 뜻을 밝힐 경우 수사가 본격화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5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교제폭력 현장에서는 이를 직접 규율하는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어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수사 개시와 대응 수위를 좌우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제폭력을 규율하는 법안 제정이 시급하지만 관련 법안들은 10년 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폭력 112 신고 건수는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2021년 5만7305건에서 지난해 8만8394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11월까지 집계된 신고 건수만 9만6520여건에 달해 이미 지난해 수치를 넘어섰다.

반면 같은 기간 교제폭력 검거 현황에서 불구속 처리 비율은 매년 97~98%대를 유지했다. 신고는 늘었지만 대응 방식엔 큰 변화가 없었던 셈이다.

현행 제도에선 피해자 의사가 사실상 핵심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면서, 교제폭력의 특성과 잠재적 위험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여성계의 지적이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여성학 박사)은 "살인의 고의나 중한 상해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 진술만으로 바로 입건하기는 (경찰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문제는 이런 판단 구조가 반복될 경우 더 큰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단순 폭행이 반의사불벌죄라고 하더라도 다른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적극 검토했어야 했다"며 "해당 사례는 피해자가 운이 좋아서 죽음을 피했을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스토킹 교제폭력 관련 대책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09.24.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이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스토킹 교제폭력 관련 대책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09.24. [email protected]


하지만 형사사법 전문가들은 교제폭력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법적 틀이 부재한 상황에서 현장 대응 기준이 피해자 의사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지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교제폭력을 다루는 특별법이 없다 보니 각각의 행위 유형에 따른 형법 범죄에 적용해 처벌하는 구조"라며 "기준을 명확히 하려면 법적인 부분이 해소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 규정은 반복성이나 위협의 정도 등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 피해자 의사가 입건 판단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현장 경찰 입장에선 지나치게 적극 대응할 경우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제폭력 관련 법안은 2016년 이후 지속적으로 발의됐지만, 10년 가까이 법제화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교제폭력 관련 법안은 크게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을 통해 교제폭력을 포섭하는 법안 ▲스토킹처벌법 개정을 통해 교제폭력을 포섭하는 법안 ▲별도의 교제폭력 관련 법안 제정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는 교제폭력을 '친밀한 관계 내 폭력'으로 포섭해 가정폭력처벌법을 전면 개정하는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배제하고, 초기 단계부터 공권력 개입과 피해자 보호조치를 가능하게 하자는 취지다.

경찰도 별도 입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경찰청 관계자는 "적극 개입 시 과잉 대응으로 민원이 제기되는 사례도 적지 않아 현장 대응을 소극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면서 "근본적인 문제는 교제폭력을 별도로 규율하는 법이 없다는 점이며,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14건 계류돼 있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 내부에서도 교제폭력 대응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커지고 있다.

경찰청은 최근 업무보고를 통해 교제폭력 통계 관리 고도화 계획을 밝히고, 기존에 수기로 관리하던 관련 통계를 경찰 정보시스템(KICS·CSS)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찰은 범죄 발생 시간대·장소와 검거 현황, 피의자 전과 여부, 피해자 신체 피해 상황 등 산출 항목을 기존 5개에서 21개로 확대해 보다 정밀한 통계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해당 시스템은 내년부터 본격 활용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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