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 청춘로드, 어느 가난한 날의 일기

멕시코 남부의 중심도시 오아하까에서 조금 더 들어간 길. 한눈에 보기에도 허름한 집들로 더덕더덕 붙어 있는 작은 마을에서 예배가 열린단다. 하지만 골목을 돌고, 씀벅거리며 고개를 돌려도 교회가 보이지 않았다. 표지판 하나 있을 리 없는 허름한 골목을 돌고 돌아 어느 작은 집 대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주 초라한 예배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자립 교회로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였다.
시간이 조금 남았다. 아이들은 낯선 이에게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쉽게 다가오질 못했다. 멀리서만 수줍게 웃어 보이다 도망가기를 수차례. 친해지고 싶어도 제 먼저 달아나는 통에 선뜻 살갑게 대할 수도 없었다. 내가 가는 길마다 뒤쫓아 오면서도 막상 뒤돌아보면 숨어 버리는 녀석들이다.
“과자 먹으러 안 갈래??”
이 한 마디는 마법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저기 은폐엄폐 하던 개구쟁이 녀석들이 일제히 몰려 나왔다. 손을 내밀었다. 덥썩 잡는다. 꽈악. 폴짝폴짝, 가게까지 가는 길에 아이들 걸음에 생기가 돈다. 그런데 막상 슈퍼에 들어가서는 머뭇거린다.
“괜찮아, 아무거나 골라.”
웃으며 얘기하자 철없는 막둥이 녀석이 잽싸게 과자 하나를 집어 들더니 하나 더 집어도 되냐는 무언의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본다. 바닐라 맛과 초콜릿 맛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폼이다. 누나가 얼른 어깨를 잡고 말리는 시늉을 하자 아이는 어깨를 털며 내게서 나오는 보다 정확하고 현명한 답을 기다린다.
“괜찮다니깐. 하나 더 골라도 돼. 먹고 싶은 거 있음 다 골라 봐.”
아이는 신이 났다. 초라한 가게라 먼지 수북 쌓인 몇 개의 과자뿐이지만 가속 액셀레이터를 밟은 스포츠카 마냥 진열대의 과자를 재빨리 모두 눈으로 훑는다. 그리고는 제법 묵직한 과자를 조막만한 손에 쥔다. 누가 뺏을까 다 들어가지도 않는 주머니 속에 억지로 담는 녀석도 있다. 요리조리 요령을 피워보지만 주머니 밖으로 과자가 반은 나와 있다. 그럼 다시 낡은 티셔츠를 과자 위로 덮어 제 딴엔 표시가 안 나도록 노력한다.
다른 아이들도 순례행렬(?)을 마치고 이제 나를 친구로 맞아들이기로 작정했다는 듯 깔깔거린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든 녀석들은 괜찮다며 눈치껏 하나만 집는다. 막내들은 이성보다 본능이 우선이다. 예닐곱 살 먹은 녀석들은 욕심을 차릴 때가 가장 아이답다. 그때가 귀엽다.
예배가 시작될 즈음, 자리를 채운 사람은 고작 열 명 남짓 정도다. 그나마 아이들까지 합해서다. 하지만 여느 예배 못지않게 이들은 신에 대한 절절한 믿음을 고백한다. 달랑 기타 한 대로 진행되는 작은 모임이지만 무엇보다 교회의 크기나 예배 시스템 등 신앙의 본질을 벗어난 형식적 프로그램이 아닌 자발적 모임으로 이뤄진 순수함이 좋았다. 같이 기도하고, 같이 노래 부르면서 간만에 밀려오는 평안에 감사했다.
예배 후에는 다른 가정집을 방문했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 위로가 필요한 곳이었다.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듬성듬성 판자촌 다름 아닌 마을이 나왔다. 집의 구조는 처참했다. 일단 지붕이 없었다. 다행히 추위가 엄습하지 않는 지역이긴 하지만 비라도 오는 날엔 어떻게 하는 건지 생각만으로도 우울한 피로가 몰려온다. 집은 3평이나 될까 하는 좁은 방 하나에 모든 세간들이 다 놓여 있었다. 방 한켠엔 다 낡아 떨어진 침대가, 그리고 부엌도 없이 모든 주방용품이 침대 맞은편에 나뒹굴고 있었고, 옷이라고 해 봐야 폐품 수준의 몇 벌만이 구석에 쳐박혀 있었다. 최악의 위생 상태에 노출된 것이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 보이는 아이들은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고 좋아한다. 아이 엄마는 누워 있는 남편을 뒤로 하고 손님에게 뭐라도 대접하려고 한다. 교회에서 지원을 해 주기는 하지만 교회 사정도 열악하기는 매한가지라 서로가 위로하며 험한 삶을 버텨 나간다. 이들은 동이 트면 길가로 나가 재활용품 수거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어쩌다 우유라도 마시는 날엔 아이들 표정이 행복하기만 하다.
몇백만 원이 없어 집 한 채를 온전히 짓지 못하고 돼지우리와 다를 바 없는 판잣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가난은 누구의 책임일까. 무조건 이들의 무능력만을 탓해야 할까. 지지직거리지만 그나마 드라마라도 볼 수 있는 TV가 있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위안거리다. 물론 전기는 조잡한 전선을 엮어다 불법으로 끌어다 쓰고 있지만 전기, 수도 시설도 갖추지 못한 곳에 이것까지 통제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처사 같다.
밤늦은 시각, 벌레 우는 소리와 휘영청 밝은 달이 마치 내 어릴 적 시골 같아 낯설지 않은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육을 받지 못하니 사회적 약자로 남아 어느 외진 곳에 그들만의 무리를 이뤄 모든 것으로부터 도태되고 다시 교육을 못 받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정녕 부모의 억센 운명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이 조그만 아이들을 구원할 제도적 시스템은 전무한 건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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