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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유럽 침공 땐 독일이 병참 지원의 핵심

등록 2025.11.28 09:22:27수정 2025.11.28 09: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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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남부 알프스에 막혀 나토군 독일 통과 불가피

냉전 종식 뒤 인프라 낡고 평시 제정 법령들도 장애

새 작전 계획 따라 문제점 파악하고 인프라 개선 집중

[함부르크=AP/뉴시스]지난 9월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서 실시된 병력 이동 훈련에서 예비군으로 구성된 모의 시위대가 도로를 장악하고 군대 이동을 가로막고 있다. 독일연방군은 이들 해산에 가담할 수 없도록 돼 있어 경찰이 나섰으나 경찰은 해산에 필요한 장비가 없어 군대 이동이 2시간 가량 지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독일은 러시아의 유럽 침공에 대비한 훈련에 한창이다. 2025.11.28.

[함부르크=AP/뉴시스]지난 9월 독일 북부 함부르크에서 실시된 병력 이동 훈련에서 예비군으로 구성된 모의 시위대가 도로를 장악하고 군대 이동을 가로막고 있다. 독일연방군은 이들 해산에 가담할 수 없도록 돼 있어 경찰이 나섰으나 경찰은 해산에 필요한 장비가 없어 군대 이동이 2시간 가량 지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독일은 러시아의 유럽 침공에 대비한 훈련에 한창이다. 2025.11.28.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독일연방군 고위 장교 12명이 러시아와 전쟁을 할 경우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작성했다.

독일이 러시아의 침공이 멀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작전 계획을 실행하는 훈련에 한창이라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각국이 군비 증강을 강화하도록 자극했다. 그러나 미래 전쟁의 성패는 전장에 배치된 병력과 무기에만 달려 있지 않다. 무엇보다 거대한 병참지원 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독일은 병참 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1200 페이지에 달하는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이 작전 계획은 최대 80만 명의 독일, 미국 및 기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병력을 동쪽 최전선으로 수송하는 것이 목적이다.

병력과 장비를 어떤 항구와 강, 철도, 도로를 통해 이동할지, 또 이동 중 어떻게 보급과 보호를 받을지를 그려놓았다.

알프스 산맥 때문에 유럽의 남부는 대규모 병력과 장비 이동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따라서 러시아와 전쟁이 벌어질 경우 나토 병력은 독일을 가로질러 이동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작전 계획은 독일연방군 단독으로는 대규모의 병참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전사회적 접근”을 작전 실행에 핵심 요소로 꼽고 있다.

병참 지원 작전 계획은 냉전 시기처럼 민간 영역과 군사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작성됐으며 낡은 인프라, 불충분한 법률, 군 규모 축소 등 새로운 위협과 장애 요인을 반영해 수립됐다.

독일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2029년 나토를 공격할 준비를 갖출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일련의 스파이 사건, 사보타주 공격, 유럽 상공 침범 사건들이 러시아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러시아가 2029년보다 일찍 기습 공격을 준비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또 미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휴전이 성사될 경우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 공격 준비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독일의 작전 계획은 유럽의 전쟁 능력을 강화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물론 전쟁 발발 자체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민간 기업의 야전 캠프 설치 훈련

유럽 최대 방산업체인 라인메탈은 최근 동독 시골 마을에 500명 병력을 위한 야전 캠프를 설치하는 훈련을 했다.

숙소와 샤워 부스 48개, 주유소 5곳, 야전 주방, 드론 감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걸러내는 무장 경비까지 갖춘 캠프였다. 14일 만에 모든 시설을 지었다가 7일 만에 해체했다.

라인메탈의 군수 사업 책임자 마르크 렘머만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작은 마을을 짓고 며칠 만에 해체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며 뿌듯해 했다.

라인메탈은 최근 독일과 나토 병력 재보급을 위한 2억6000만 유로(약 4411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독일 연방군은 전쟁 대비 계획 실행의 큰 부분을 민간 부문에 의존하고 있다.

라인메탈의 기지 건설 작전에서 문제점이 다수 지적됐다.

모든 차량을 한 곳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부지가 없어서
병사들을 버스로 이리저리 실어 나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번 예행연습에서는, 군용 차량 행렬 이동을 위해 특정 지점에 새 신호등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훈련 통해 얻은 교훈 작전 계획에 반영

이런 교훈들이 작전 계획에 반영되고 있다.

독일 군사 기획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장애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느려터진 조달 절차, 까다로운 개인정보보호법, 그리고 보다 평화로운 시기에 만들어진 각종 규정들이 그것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사고방식을 고쳐야 하고 한 세대에 걸쳐 익숙해진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

닐스 슈미트 독일 국방 차관은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을 다시 배워야 한다”며 “(냉전 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알려줄 수 있는 은퇴한 사람들을 다시 끌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독의 슈타인하우젠과 브렌켄 사이를 잇는 A44 연방 고속도로 의 5.6km 구간은 중앙분리대가 잔디가 아니라 단단한 아스팔트로 돼 있다. 휴게소도 유난히 크고 모양도 이상하며 육교나 전선도 없다. 이곳은 몇 분 안에 가드레일를 해체하고 이동식 관제탑을 설치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냉전 시기에 비상 활주로로 쓰기 위해 건설한 곳이다. 독일 아우토반에는 이런 곳이 수십 군데다. 휴게소 주차장 밑에는 항공유 탱크가 묻혀 있다.
 
이 같은 ‘이중용도 인프라’는 냉전 시기 독일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의무 징병제에 더해 고속도로, 다리, 기차역, 항구 모두 필요 시 군사 자산으로 쓰이도록 설계됐다.

냉전 이후 건설된 인프라 전시 대비 태부족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이중용도 인프라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 이후 지어진 터널과 다리는 화물차 행렬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좁거나 약한 경우가 많았다. 2009년 독일 정부는 군용 차량 통행을 지탱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도로 표지판을 설치하는 의무를 없앴다.

냉전 시절에 건설된 인프라조차 낡아서 유사시 활용할 수 없게 된 곳도 많다.

독일 정부는 고속도로의 20%, 고속도로 다리의 4분의 1 이상이 보수가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독일 북해와 발트 해 항구는 정비하는데 약 150억 유로가 필요하다.

이처럼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기에 독일을 통한 군대 이동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태다.

지난해 2월25일 밤, 네덜란드 국적 화물선 ‘라피다’가 독일 북서부 훈테강 위에 놓인 철도 교량과 충돌하면서 철도 교통이 차단된 적이 있다.

철도회사 도이체반이 2개월에 걸쳐 임시 교량을 설치함으로써 다시 개통했으나 7월 다른 선박이 임시 교량과 충돌해 다시 한 달 동안 철도 운행이 중단됐다.

이 사건으로 나토에 비상이 걸렸다. 북해의 노르덴함 항구로 이어지는 유일한 철도 노선이 끊겼기 때문이다.

당시 노르덴함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모든 탄약 선적을 처리할 수 있는 북유럽의 유일한 터미널이었다.

교량 충돌 사건이 고의적이라는 증거가 없었지만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 탄약 보급이 중단되면서 유럽 주둔 미군사령부가 탄약 선적을 폴란드 항구로 돌려야 했다.

인프라 개선에 282조 투입

독일 정부는 2029년까지 1660억 유로(약 281조7000억 원)를 인프라에 투자할 계획이며 이중 1000억 유로 이상이 철도 보수에 사용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며칠 뒤 독일은 독일의 ‘전쟁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시대적 전환”을 선언하고 1000억 유로 규모의 재무장 특별기금 설치를 발표했다.

그해 말, 독일연방군이 국내 작전을 총괄하는 영토사령부를 신설해 작전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러시아와 전쟁이 벌어지면 독일이 최전선 국가가 되지는 않겠지만 최대의 병참 집결지가 될 수밖에 없다. 낡은 인프라를 개선하는 것에 더해 축소된 군대 규모를 다시 늘리고 드론 등 새로운 위협에도 맞서야 했다.

이는 군이 민간 부문 및 민간 조직과 과거 어느 때보다도 큰 규모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3월까지 영토사령부는 각 부처, 정부 기관, 지방 당국의 피드백을 반영해 첫 번째 작전 계획을 완성했다.

이제 계획을 실행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독일의 새 정부가 올해 5000억 유로 규모의 국방 지출 계획과 징병제 부활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동안, 독일 연방군은 병원, 경찰, 재난 구조 기관에 브리핑하고, 주(州)들과 아우토반 운영사들과 협약을 맺으며, 군용 차량 행렬의 이동 경로를 그려 나갔다.

군민 합동 훈련 실시

지난 9월말 함부르크에서 레드 스톰 브라보(Red Storm Bravo)라는 군사 훈련이 실시됐다. 독일연방군과 경찰, 소방, 민방위 부대가 협력하는 훈련이었다.

나토 병력 500명이 항구에 상륙해 차량 65대로 행렬을 이루면서 함부르크를 관통해 동쪽으로 이동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훈련이 실시됐다. 항구 봉쇄 시도와 드론 공격, 시위에 대응하는 것도 포함됐다.

해질녘 위장복을 입은 병사들이 선착장에 조용히 집결했고 상공에는 헬리콥터가 선회했다.

자정 무렵 행렬이 출발했다.

행렬이 교차로를 통과할 때는 신호등과 무관하게 정지하지 않고 통과해야 했다. 민간 차량이 끼어들도록 허용하면 안됐다.

차량 행렬이 검문소를 통과할 때, 장교들이 차량 간격이 긴 것에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 위로 검은 드론이 윙윙거리며 날면서 잠시 소동이 벌어졌다. 곧 무전으로 드론이 독일연방군 소속이라는 확인이 들어왔다.

이어, 시위대가 덤불 속에서 튀어나와 차량 앞 도로에 드러누웠다.

모두 훈련의 일부였다. 시위대조차 예비군들이었다.

이런 상황에 병사들이 직접 대응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대응 권한이 있는 경찰은 모의 시위대를 떼어내는 데 필요한 장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차량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행렬이 이동한 거리는 고작 10km에 불과했다.

평시 전제 작성한 법령들 사보타주 대응에 장애

평시를 전제로 만들어진 법과 규정들도 사보타주에 대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러시아는 이미 독일에서 방화부터 케이블 파손까지 온갖 사보타주 행위를 벌이고 있다. 모두 철도 시스템을 겨냥한 것들이다. 지난달에는 러시아를 위해 군 시설과 철도 인프라를 파괴하려 한 한 남성에게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이번 주 폴란드는 자국 동부에서 철로를 손상시킨 폭발 사건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보기관들은 지난해에만 핵심 인프라 운영사 직원들에 대해 1만 건 가까운 신원조사를 실행했다고 밝혔다.

독일 방산 스타트업 퀀텀 시스템즈는 인프라 파괴를 감시하기 위한 드론을 생산한다. 이미 몰도바와 루마니아에 수백 대의 드론을 납품했고 우크라이나에는 수천 대를 납품했다.

그러나 독일연방군에 판매한 실적은 14대에 불과하다. 독일군이 보유한 드론조차 시가지 상공 비행을 금지하는 낡은 법규 때문이다.

작전 계획 수립에 참여했단 한 장교는 “2023년 초 완전히 빈 페이지에서 시작했음을 고려할 때 많은 진척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작전 계획 실행 훈련에서 드러났듯이 계획과 현실을 일치시키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다.
 
급증하는 사보타주, 사이버 공격, 영공 침범을 감안할 때, 평화와 전쟁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9월 연설에서 “현실적 위협이 닥쳐 있다. 우리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평시에 살고 있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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