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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연좌제로 원망스러웠던 아버지, 지금은 너무 그립습니다"

등록 2023.03.31 16:02:46수정 2023.03.31 17: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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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31일 스물두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양성홍 제주4·3희생자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이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제75주년 증언본풀이 마당 수물두 번째 '4·3, 재심과 연좌제 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에서 증언하고 있다. 2023.03.31.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양성홍 제주4·3희생자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이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제주4·3 제75주년 증언본풀이 마당 수물두 번째 '4·3, 재심과 연좌제 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에서 증언하고 있다. 2023.03.31.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4·3때문에 미래가 막히니까 20대에는 자연스럽게 방황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주4·3 당시 아버지를 잃은 양성홍 제주4·3희생자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31일 연좌제에 시달렸던 아픈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양 회장의 아버지 양두량씨는 1949년 4월께 경찰에 체포된 후 학살터로 악명높은 제주주정공장에 수용됐다. 당시 3살이었던 양 회장은 어머니에게 안겨 아버지에게 면회를 다녀왔다.

아버지는 곧 육지 형무소로 끌려갔고, 양 회장은 이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물론 면회를 다녀온 것도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랫턱이 굳어지는 청년이 다될 때까지 양씨는 아버지의 존재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끔찍한 4·3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가 단 한 번도 입 밖에 4·3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 회장은 고등학생이 돼서야 4·3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동네 형님이 길을 걷다가 문득 연좌제 이야기를 꺼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4·3으로 희생당해 연좌제에 묶여 있을 거란 막연한 조언이었다.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제주4·3 제75주년 증언본풀이 마당 수물두 번째 '4·3, 재심과 연좌제 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2023.03.31.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31일 오후 제주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에서 제주4·3 제75주년 증언본풀이 마당 수물두 번째 '4·3, 재심과 연좌제 창창한 꿈마저 빼앗겨수다' 시간이 진행되고 있다. 2023.03.31. [email protected]

그런 연좌제가 결국 현실로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던 양 회장은 갑작스레 일을 그만둬야 했다. 신원 조회에서 4·3 이력이 나와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 후 양 회장의 방황이 시작됐다. 시비에 말려 경찰서에 갔지만, 같이 싸운 사람은 곧 풀려났지만 양 회장은 경찰에게 '빨갱이 새끼' 소릴 들으며 유치장에 보내졌다.

연좌제로 설움을 겪은 양 회장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젊은 시절을 방황하기에 이르렀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이해도 생겼다.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설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했다.

아버지의 존재는 1999년 신문에서 발견한 명단 속에서 뚜렷해졌다. 이도역 박사가 미국 비밀 문서 보관소에서 꺼낸 서류에 아버지의 이름이 실려있었다.

[제주=뉴시스] 백동현 기자 = 지난해 3월31일 오전 제주시 4.3 평화공원에서 양성홍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위령비를 쓰담고 있다. 양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4.3 사건 당시 대전형무소로 끌려간 이후 제주로 돌아오시지 못했다. 2022.04.01. livertrent@newsis.com

[제주=뉴시스] 백동현 기자 = 지난해 3월31일 오전 제주시 4.3 평화공원에서 양성홍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위령비를 쓰담고 있다. 양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4.3 사건 당시 대전형무소로 끌려간 이후 제주로 돌아오시지 못했다. 2022.04.01. [email protected]

지난해 8월 제주지방법원 형사4-2부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11차 직권재심 청구인 30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안에 양 회장의 아버지 양두량씨도 포함됐다.

양 회장은 "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지만, 아버지는 당시 고작 27살이었다"면서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처자식을 두고 그 길을 떠나면서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생각해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제주4·3연구소는 2002년부터 해마다 4·3 증언본풀이 마당을 열어 4·3 체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날 스물두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을 준비한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이 본풀이 마당은 4·3의 기억을 살아남은 이들의 목소리로 전승하고, 상처를 공유하며 치유하는 공간"이라며 "4·3을 체험하지 안흔 미래 세대들에게는 4·3이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역사임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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