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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출, 서민 주거사다리 '선한 의도'였지만…[집피지기]

등록 2023.05.0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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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집값 상승 불쏘시개 된 전세대출

갭투자자·전세사기범 먹잇감 되기도

축소 필요하지만 국민정서상 쉽지 않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자산이 부족한 서민들에게 전세를 살 수 있도록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전세자금대출이 바로 그렇습니다.

전세사기 사건이 전국 각지에서 터지면서 목돈을 남에게 맡기는 전세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인 간 거래인 전세 자체를 정부가 나서서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다만 사실상 한도 없이 무분별하게 운영되는 전세대출 제도는 손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전세보증금의 10%만 있어도 나머지 90%를 대출해 주다보니 너도 나도 대출을 받은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최근 90%까지 낮아지긴 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이 100%였습니다. 임차인이 전세대출을 못 갚아도 공적기관에서 보증금을 다 갚아준다는 얘기입니다.

임차인에게 유리한 이 구조가 갭투자자 혹은 전세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됐죠.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대출이자 지원 등을 내세우며 월세 대신 목돈을 맡기는 전세를 부추겼다는 사례는 전세사기의 단골 수법으로 등장합니다.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 했던 것이 아니더라도, 전세대출로 인한 유동성 확대가 부동산 시장을 어지럽힌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대출이 사실상 한도 없이 나오다 보니 자금 조달이 쉬워져 전셋값이 뻥튀기 됐고,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밀어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쉬운 전세대출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멀어지게 일조한 것이죠.

전문가들은 전세대출을 일정 수준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지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정부가 대출 한도를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세에 살며 돈을 모으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독특한 부동산 관행 때문에 전세대출은 서민 복지의 수단으로 쓰여 왔기 때문입니다.

집값을 잡겠다고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신용대출마저 조였던 지난 정부에서도 전세대출은 차마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전세대출이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로 쓰였다는 점을 모를 리 없지만 임대차3법으로 전셋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국민정서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전세대출을 적정한 수준에서 제한하는 것이 서민들에게도 득이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제도 운용의 묘가 발휘될 것 같습니다.

※'집피지기' = '집을 알고 나를 알면 집 걱정을 덜 수 있다'는 뜻으로, 부동산 관련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 위한 연재물입니다. 어떤 궁금증이든 속 시원하게 풀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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