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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폭동 20주년…불안 여전하지만 '희망'도 싹터

등록 2012.04.27 15:25:58수정 2016.12.28 00: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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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AP/뉴시스】17일(현지시간) 촬영한 사진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남중부에 있는 플로렌스와 노만디 애비뉴를 통과하는 교차로 앞에 표지판이 보이고 있다. 이 교차로는 지난 1992년 4월29일 LA 폭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곳으로 당시 백인 트럭 운전사였던 레지널드 데니가 폭도들로부터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LA 폭동은 당시 청년이었던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관 4명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촉발됐다. LA 폭동으로 자동차가 파손되고 상점이 불에 타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LA 폭동으로 55명이 사망하고 2300명이 부상했으며 건물 1500채가 파괴되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17일(현지시간) 촬영한 사진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남중부에 있는 플로렌스와 노만디 애비뉴를 통과하는 교차로 앞에 표지판이 보이고 있다. 이 교차로는 지난 1992년 4월29일 LA 폭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곳으로 당시 백인 트럭 운전사였던 레지널드 데니가 폭도들로부터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LA 폭동은 당시 청년이었던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관 4명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촉발됐다. LA 폭동으로 자동차가 파손되고 상점이 불에 타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LA 폭동으로 55명이 사망하고 2300명이 부상했으며 건물 1500채가 파괴되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서울=뉴시스】권성근 기자= 지난 1992년 4월29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남부에 있는 플로렌스와 노만디 애비뉴를 관통하는 교차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폭동이 발생했던 곳이다.

 CNN은 이곳에서 당시 흑인 청년이었던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 4명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폭동을 일으켰으며 백인 트럭 운전사 레지널드 데니가 흥분한 흑인 폭도들로부터 TV 카메라 앞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던 장소라고 전했다.

 LA 폭동으로 54명이 사망하고 건물 3000여 채가 파손되는 등 10억 달러의 재산 손실을 남겼다. LA 폭동 후 많은 사람들은 LA 남부가 경제적으로 황폐한 지역이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그러나 LA 폭동 이후 조직된 소규모 개발 프로그램인 '오퍼레이션 호프'(Operation Hope)의 설립자인 존 호프 브라이언트의 생각은 달랐다.

 브라이언트는 LA 폭동 20주년을 맞아 LA의 변화를 돌아보기 위해 24일(현지시간) 은행가, 사업가, 정치인, 기업가들을 이끌고 버스 투어에 나섰다. LA 카운티 경제개발기구에 따르면 LA의 제조업 일자리 수는 지난 1992년 이후 70만 개에서 37만 개로 감소했다. 그러나 브라이언트는 LA에서 폭동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에 대한 경제적인 전망을 낙관하고 있다.

 그는 "1992년에 폭동이 발생한 이후 지난 20년 간 LA 남부 지역과 그 주변에 10억 달러의 자금이 투자됐다"고 말했다. LA 폭동은 도시 환경의 황폐화 및 LA 경찰과 지역주민 특히 흑인들과의 대립이 주요 원인이었다.

 LA 폭동이 발생한 지역에는 이제 사업장과 쇼핑센터가 들어섰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지금까지 3명의 대통령에게 경제 자문 역할을 해왔다. 브라이언트는 LA는 높은 실업률과 소규모 사업에 대한 진입 장벽 때문에 경제 회복이 더딘 것은 사실이지만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브라이언트는 "폭풍우가 몰아친 뒤 무지개가 등장하는 것처럼 앞으로 20년 뒤에는 LA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주요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LA 남부가 과거의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지역 공동체를 구성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오퍼레이션 호프'가 주관한 버스 투어에는 세계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스도 탑승했다. 버스 투어에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 시장이 존스의 공로를 인정해 그의 이름을 붙인 초등학교의 학생들도 동승했다. 이 학교는 LA 폭동 때 폭도들의 방화로 폐허가 됐던 곳이다.

 퀸시 존스는 갱스터가 거리들을 장악한 인종 간에 갈등이 심한 시카고 남부 지역에서 성장했다며 "내가 어릴 때는 어떤 롤모델도 찾을 수 없었다"며 "나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건립될 것이라는 상상은 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뉴시스】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 발생한 사흘째인 1992년 5월1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로의 코리아타운 건물이 불타고 있는 모습(사진 위)과 지난 26일 같은 장소를 찍은 모습(사진 아래).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 29일로 발생 20주년을 맞는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뉴시스】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 발생한 사흘째인 1992년 5월1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로의 코리아타운 건물이 불타고 있는 모습(사진 위)과 지난 26일 같은 장소를 찍은 모습(사진 아래).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 29일로 발생 20주년을 맞는다.

 플로렌스와 노만디 애비뉴 주변 환경은 더 개선됐다. 이곳에서 약 1.5㎞ 떨어진 스트립 몰에는 농구스타 매직 존슨 등이 투자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는 스타벅스, 잠바주스와 같은 유명 상점들과 식료품점 등이 자리를 잡았다.

 LA 폭동 때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주민들은 다름 아닌 한인들이었다. LA 폭동의 원인이 됐던 인종 간 갈등 특히 흑인과 한인 간 갈등은 최근 많이 완화됐다. LA 폭동 때 폭도들은 한인 업소들을 상대로 집중적인 약탈을 저질렀다.

 LA 폭동으로 한인 상인들은 4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언어적인 장벽과 문화적인 차이가 LA 폭동의 피해를 키운 하나의 원인이기도 했다.

 플로렌스와 노만디 애비뉴 코너에 있는 주류 판매점 톰스 리쿼는 예전에 술취한 사람들이 서성거리던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온 오씨는 3년 전 이 가게를 인수했다. 그는 모든 고객들을 특별히 대하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오씨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간단하다"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다툴 일도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가게를 인수한 후 술 주정뱅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건물에 새롭게 페인팅도 했다.

 오씨는 주류 외에 안주 등 음식물, 아이들을 위한 물품을 취급해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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