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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모프 사후 우즈벡 어디로?…"안정적 수구세력 체제 이어질 듯"

등록 2016.09.07 18:31:28수정 2016.12.28 17: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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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뉴시스】지난 8월 24일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아온 이슬람 카리모프(77)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대단히 위중한 상태"에 있다고 2일 정부가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을 현지 정부가 2일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1월 1일 사마르칸드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와 대화 중인 카리모프 대통령. 2016.09.02

【 =AP/뉴시스】지난 8월 24일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아온 이슬람 카리모프(77)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대단히 위중한 상태"에 있다고 2일 정부가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을  현지 정부가 2일 발표했다. 사진은 지난 1월 1일 사마르칸드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와 대화 중인 카리모프 대통령. 2016.09.02

【서울=뉴시스】박상주 기자 =  25년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사후 우즈베키스탄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세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거점인 우즈베키스탄의 정정혼란은 중앙아시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지난 2일 우즈베키스탄 국영 TV방송은 카리모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5년 동안 우즈베키스탄을 철권 통치했던 카리모프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카리모프 죽음 후 권력공백?

 우즈베키스탄 관측통들은 카리모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이후 권력의 공백을 맞은 우즈베키스탄이 극심한 정정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으며, 중앙아시아 전체의 세력 균형이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사주에 의한 '컬러혁명(Color Revolution, 민중봉기)'이 발발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폴린 존스 미시간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을 통해 카리모프 사후 정정 혼란에 대한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것이며 우즈베키스탄에는 앞으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리모프 체제를 떠받치던 수구 엘리트 세력들에 의한 안정적인 체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존스 교수는 카리모프 대통령이 25년간 철권통치를 하면서 구축한 엘리트 중심의 체제가 아주 공고하며, 이들 정치권력들이 막후 협상을 통해 정치 혼란 없는 안정적인 후계구도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존스 교수는 지난 며칠 사이 우즈베키스탄의 막후 실력자들은 카리모프 대통령의 사망  발표를 늦추면서 밀실에서 후계구도를 절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큰 혼동 없이 차분하게 이런 절차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즈베키스탄이 정치권 엘리트들 사이에 의견 조율을 통해 상황을 잘 통제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에서 짐작하는 대로 후계 구도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불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 3가지 이유

 카리모프 대통령은 그동안 소수 엘리트들이 통치하는 정치제도를 만들었다. 카리모프 대통령이 죽더라도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 공고한 지배 엘리트 중심의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존스 교수는 카리모프 사후 우즈베키스탄에 정치적 혼돈이 없을 것이라는 근거를 세 가지로 조목조목 설명했다. 첫째,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체제에 충성하는 엘리트들만이 면화와 금, 우라늄, 천연가스 등 우즈베키스탄의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엄청난 기득권을 보장받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금수저들은 현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둘째, 우즈베키스탄 기득권 세력은 서로 감시를 하는 체제 아래 놓여있다. 기득권 세력들의 막후 협의에 따라 누가 후계자로 결정되더라도 이를 거부하기가 어렵다. 카리모프의 후계자를 거부하는 사람은 누구라고 기득권 세력권에서 축출될 수밖에 없다.

 셋째, 우즈베키스탄 정치 엘리트들은 대중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필요가 없다. 설혹 우즈베키스탄 국민 대다수가 정권을 바꾸고 싶어 한다 하더라도 이를 정치세력으로 묶어낼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그동안 사회적, 정치적 반체제 세력들의 싹을 아예 잘라버렸다. 정치적으로 불온한 움직임이 조금만 감지되면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린 것이다. 카리모프의 25년 철권통치 아래에서 표현의 자유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반체제 인사들은 가차 없이 체포되거나 구금됐으며, 고문과 추방은 일상사였다. 존스 교수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후계자 역시 이런 철권통치를 이어갈 것이며, 우즈베키스탄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25년 카리모프 철권통치는 막 내려

 우즈베키스탄은 동서냉전 체제 붕괴이후인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우즈베키스탄은 그러나 사회적, 경제적 독립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러시아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카리모프 대통령 자신이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했다. 그는 1989년 우즈베키스탄 공산당 제1서기 자리에 오른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런 카리모프 대통령이 8월 중순 이후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뇌출혈로 쓰러져 수도 타슈켄트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다음 날 성명서를 통해 카리모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밝혔다. 성명서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상태나 병명은 밝히지 않은 채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밀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다. 일정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었다. 일부 외신들은 대통령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 2일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대통령의 건강이 지난 24시간 동안에 급작스럽게 나빠져 위독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무거운 마음으로 알린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수 시간 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국영 TV방송을 통해 카리모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 “막후 실력자들, 밀실협상 통해 후계자 내세울 듯”

 카리모프 대통령 사후 우즈베키스탄 힘의 공백에 대한 우려는 정해진 후계자가 없을 뿐 아니라 권력이양을 위한 분명한 계획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데서 기인하고 있다.

 대부분 독재자가 그렇듯 카리모프 대통령 역시 제2인자의 부상을 극도로 경계했다. 자신의 딸마저 후계자로 부상하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카리모프 대통령의 딸인 굴나라 카리모바는 정치적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카리모바는 불법적인 국제거래에 관여하는 등 정치적 물의를 여러 차례 일으켰었다. 그때마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지난 2014년에는 딸을 가택 연금시키기도 했다.

【타슈켄트=AP/뉴시스】이슬람 카리모프(78)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사망설이 떠도는 가운데 그의 사망 후 대통령직을 맡을 후임이 없어 불투명한 우즈베키스탄 정국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확인되지 않은 보고에 따르면 카리모프 대통령이 이미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러시아 언론은 31일 타슈켄트에서 열리기로 한 독립 25주년 축하행사가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이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담긴 대형 포스터가 29일 타슈켄트에 잇는 도서관 앞에 있는 모습. 2016.08.31

【타슈켄트=AP/뉴시스】이슬람 카리모프(78)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사망설이 떠도는 가운데 그의 사망 후 대통령직을 맡을 후임이 없어 불투명한 우즈베키스탄 정국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확인되지 않은 보고에 따르면 카리모프 대통령이 이미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러시아 언론은 31일 타슈켄트에서 열리기로 한 독립 25주년 축하행사가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카리모프 대통령이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담긴 대형 포스터가 29일 타슈켄트에 잇는 도서관 앞에 있는 모습. 2016.08.31

 지난 2010년 개정된 우즈베키스탄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유고시 상원의장이 선거를 통해 새 대통령을 뽑을 때까지 대통령직을 대행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에서 공정하고 민주적인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선거가 실시되기 이전에 정치권의 막후 협상을 통해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 정해질 뿐이다. 군부와 보안세력을 대표하는 몇몇 막후 실력자들이 모여 후계자를 결정할 전망이다.

 ◇ 이슬람 급진세력들, 우즈베키스탄 젊은이들 공략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나라다. 3000만 여명에 달하는 우즈베키스탄 인구 중 절반 정도가 25세 이하인 젊은 나라이기도 하다. 우즈베키스탄 인구 중 젊은 층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큰 강점이면서도 아주 위험한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그동안 이슬람 급진 세력들이 젊은 대원들을 포섭하는 전략적 무대로 꼽혀온 곳이다.

 우즈베키스탄 젊은이들 사이엔 오랜 경기 침체로 인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 이슬람 급진 세력들이 침투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은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등을 포함한 민감한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무장 반군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타지키스탄을 제외하고는 중앙아시아에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가장 잦은 나라이다. 우즈베키스탄은 또한 시리아 등지의 이슬람 과격 단체들이 가장 많은 대원들을 충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25년 동안 철권 통치를 하는 동안 카리모프 대통령은 무슬림 세력들의 반정부 시위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군대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5년 동부 안디잔에서 일어난 무슬림 반정부 시위 때는 유혈진압으로 최대 700여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많은 분석가들은 카리모프 사후 우즈베키스탄의 정국 혼란은 이슬람들이 봉기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slamic Movement of Uzbekistan)’ 등은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에 이슬람국가 건설을 선언했으며, 최근 이러한 목표를 재천명하기도 했다. 카리모프 사후의 권력이양 과정이 매끄럽지 못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경제상황이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 막대한 자원 가진 실크로드 전략 요충지

 우즈베키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전략요충지이다. 그런 만큼 우즈베키스탄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은 중앙아시아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지금도 러시아와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힘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나는 원유와 가스를 러시아와 중국으로 나르는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우즈베키스탄 자체가 세계적으로 꼽히는 규모의 천연가스를 매장하고 있다.

 카리모프는 우즈베키스탄이 주변국들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왔다. 종종 우즈베키스탄의 무역장벽을 높임으로써 주변 국가들에게 힘을 과시하고는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하는 지역 무역기구에도 가입을 거부할 정도로 자신감과 배짱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 영향력 확대를 위해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구애를 지속해 왔다.

 우즈베키스탄을 통한 교역로는 또한 마약 밀매 등의 통로로도 이용돼 왔다. 카리모프 사후 정정 혼란이 발생할 경우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배되는 마약을 러시아로 실어 나르는 우즈베키스탄의 마약 밀매 루트는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 "미국에서 컬러혁명 부추길 가능성"

 존스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우즈베키스탄이 급격한 혼란 속으로 치닫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AP통신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이 카리모프 대통령의 유고상황을 이용해 '컬러혁명(Color Revolution)'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컬러혁명’이란 동서 냉전체제 붕괴 이후인 2000년대 초, 소련 위성국이었던 지역에서 공산 독재정권을 붕괴시킨 비폭력적 시민저항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친 크렘린 성향의 모스크바 정치 분석가인 알렉세이 마르티노프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5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불발로 끝난 쿠데타의 배후 세력인 미국의 정치 공학 기술자들이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그런 시도를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라면서 “우즈베키스탄 정보기관들은 타슈켄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주의깊에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옛 소련의 붕괴 이후 2003년 조지아(당시 국명은 그루지아)에서는 ‘장미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에 장미를 쥐고 의회건물을 점거한 끝에 셰바르드나제 정권을 붕괴시켰다.

 2004년 10월 우크라이나에서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오렌지색 옷과 오렌지색 목도리, 오렌지색 깃발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오렌지혁명’을 성공시켰다.

 2005년 3월 키르기스스탄 시민들은 14년 동안 장기 집권하고 있던 아스카르 아카예프 정권의 부정선거에 맞서 봉기한 끝에 ‘튤립혁명’을 성공시켰다. 키르기스스탄 북부 산악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 튤립을 혁명의 상징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튤립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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