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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히틀러의 유대인학살,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사주했다"

등록 2015.10.22 08:36:37수정 2016.12.28 15: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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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1941년 12월 팔레스타인 민족기구 지도자 하즈 아민 알 후세이니(왼쪽)과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재자가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2015.10.22.

【서울=뉴시스】1941년 12월 팔레스타인 민족기구 지도자 하즈 아민 알 후세이니(왼쪽)과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재자가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2015.10.22.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히틀러는 유태인을 몰살시키려 하지 않았다. 단지 유럽에서 쫓아내려고 했을 뿐이다. 유태인을 몰살시키라고 히틀러에게 사주한 것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도자 후세이니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열린 세계 유대인연합결성 연설에서 유대인을 학살의 책임을 히틀러가 아닌 팔레스타인에 돌리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21일(현지시간) CNN은 네타냐후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를 사주해 유대인 학살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팔레스타인 민족기구 지도자였던 하즈 아민 알 후세이니를 지목했다고 보도했다.

 후세이니가 유태인 학살을 사주했다고 네타냐후가 주장한 정황은 이렇다.

 네타냐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후세이니가 히틀러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유럽에서 쫓아내면 그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으로 건너 올 것이다"

 이에 히틀러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고, 이에 후세이니가 "그들을 태워 죽여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히틀러와 후세이니 사이에 이러한 대화가 오고 갔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대화 내용 스크립트도, 녹음본도, 비디오 화면도 없다.

 네타냐후의 이러한 근거 없는 주장에 사에브 에라카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은 반발했다. 에라카트는 "팔레스타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함께 싸웠다"면서 "나치에 대항한 파레스타인의 노력은 변함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긴장을 완화할 것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에라카트는 "네타냐후의 유감스러운 발언으로 정의와 평화가 간절히 요구되는 이 시점에 양국 간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며 분개했다.

 네타냐후 총리 발언에 분개한 것은 팔레스타인 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주요 야당인 노동당의 중진 의원인 아이작 헤르조그는 "네타냐후는 자신이 이스라엘 총리만이 아닌 유태인 전체의 총리라는 점을 잊었다"며 비난했다. 이어 "이것은 역사 왜곡이다. 네타냐후는 즉시 발언을 철회해야 한다"면서 "그의 발언은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의 소행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러한 황당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전에 베를린을 방문하기 전에도 후세이니를 비난했다. 네타냐후는 "후세이니가 히틀러를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 대령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과정에서 증언한 말을 인용했다. 아이히만은 당시 재판에서 "후세이니는 히틀러가 유럽에 사는 유태인들을 학살시키도록 결심하게 한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했었다.

 네타냐후는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히틀러가 홀로코스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되지만, 동시에 후세이니의 역할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었다.

 네타냐후 총리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리의 역사관은 바뀌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책임을 지킬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후세이니의 관계는 어땠을까?  

 1952년 후세이니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체류중이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그를 체포하려고 했으며, 이라크, 이란, 그리고 터키 어디에서도 후세이니의 입국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는 독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후세이니는 "나는 유럽에 가야만 했다. 그런데 어디를 갈 수 있나? 영국? 프랑스? 갈 곳은 독일 뿐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치 기록보관소 자료에 따르면, 후세이는 나치 선전 방송에 출연해,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에게 "나치의 편에서 싸우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세이니는 "자신은 유태인을 학살하라고 한 적이 없다"고 생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오히려 그는 "유태인은 13세기 동안 소수민족으로 우리 무슬림들과 살아왔다. 우리는 그들은 보호했다"면서 "유태인 학살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고 말했었다.

 현재 뉘렌베르크 나치 기록보관소에 보관돼 있는 히틀러의 1919년도 편지를 보면, 히틀러가 일찍부터 반유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 20세였던 히틀러는 독일군 장교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유대교가 독일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언급했다. 편지에서 히틀러는 "최종 목표는 유대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 한가지 방법은 정부의 힘을 빌리는 것 뿐"이라고도 언급했다. 그리고 마침내 히틀러는 유태인 학살의 꿈을 실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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