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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세종문화회관 '극장앞독립군', 두 번 공연은 너무 아깝다

등록 2019.09.22 10:40:06수정 2019.09.22 10: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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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세종문화회관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세종문화회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이 개관 41년 만에 처음으로 뭉쳐 만든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은 대규모 음악극'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이런 수식은 물론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만 국한시켜 가치를 매긴다는 것은 다소 부당한 듯 보인다.

20, 2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인 '극장 앞 독립군'은 다른 미덕도 많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내년 봉오동 전투의 승전 100주년을 기념한 작품이다. 1920년 6월7일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에서 대한북로독군부의 한국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가 봉오동전투다. 최근 유해진·류준열 주연으로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도 이 전투를 다뤘다.

아다시피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1868~1943) 장군 등이 이끌었다. '극장 앞 독립군' 주인공이 홍범도다. 19세기 말 일제에 항거해 일어선 항일의병장과 대한독립군 사령관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50여 년간 조국 해방을 위해 무장 독립투쟁을 펼친 전설적인 독립 운동가다.

카자흐스탄에서 노후를 보내던 홍범도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일대기가 시나리오에서 직조되었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홍범도는 말년에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수위로 일했다.

하지만'극장 앞 독립군'은 홍범도의 영웅적 순간만을 다루지 않는다. 실패한 독립군으로, 극장의 배우들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홍범도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다.

조국을 위한 싸움에서 영웅으로 거듭난 홍범도는 행복했을까. 극 중에서 자신의 활약이 전설처럼 부풀려진 것을 바로 잡는 홍범도는 마치 존재의 유무를 알 수 없는 바다 위 섬 같다. 삶의 공허함 속에서 탈출하고 싶던 그에게 극장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반짝이는 문이었다.

[리뷰]세종문화회관 '극장앞독립군', 두 번 공연은 너무 아깝다

그런데 실제 고려극장은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이 주축이 돼 한국어로 된 공연을 올렸으니 공산당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폐관 압박을 받았다.

'극장 앞 독립군' 속에서 고려극장 스태프, 배우들은 홍범도 장군을 소재로 한 극을 만들면서 수없이 좌절하지만 신기루 같은 희망을 엿본다.

이 지점은 '극장'이라는 문화적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지금 여기'로 호출한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가만히 있어도 볼거리가 가득한 시대에 품을 들여가야 하는 극장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목이 시사하듯 '극장 앞 독립군'은 연극에 대한 연극, 즉 메타극이기도 하다. 공연계, 특히 연극계는 유사 이래 매년 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은 무엇을 해야 하고, 극장은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하나. '독립군 같은 심정', 운운하는 것은 과할지 몰라도 그런 마음으로 연극을 해야 하나. 고연옥 극작가는 "극장을 통해서 보고 싶은 것들, 과거의 끊어진 것을 이을 수 있다는 바람을 담아 쓴 작품"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한 번 더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보통 사람들도 삶에서 절박함을 느낀다. 직장을 비롯한 생업에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개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매분 매초가 절실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고민하며 살아야 할까.

이런 성찰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건 작품의 규모 있는 완성도 때문이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서울시청소년국악단, 서울시무용단, 서울시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극단, 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체가 모두 참여하다 보니, 무대에 오르는 인원만 최대 300명이다.

[리뷰]세종문화회관 '극장앞독립군', 두 번 공연은 너무 아깝다

총 연출을 맡은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은 효율적인 운용과 깔끔한 동선을 연출했다. 야트막한 언덕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연주자석과 합창단석이 비스듬히 배치되고 그 사이에서 배우, 무용수들의 동선이 만들어졌는데 입체감이 풍부했다. 

연극 기반의 김 감독은 올해 데뷔 25년 만에 오페라 연출작 데뷔작인 서울시오페라단 '베르테르'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세종음악기행'을 연출하면서 대작 경험을 쌓았다. 그는 예술단의 분업과 조합이 무엇인지 이번에 분명히 보여준다. 총안무를 맡은 서울시무용단 정혜진 단장의 지도에 따라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 나실인의 음악이다. 뮤지컬 넘버풍의 음악을 중심으로 팝, 모던록, 국악, 재즈,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도, 극에 일관된 정서를 부여한다. 인물과 이야기의 내면의 상징화가 분명하다 보니, 다양성이 튀지 않고 극에 수렴된 것이다.

특히 극장 폐관의 통보를 받은 뒤 배우, 스태프가 함께 부르는 발라드 '극장 불의 켜지면', 원시적인 역동성의 록 '홍범도가 온다', 마지막에 희망을 노래하는 '극장은 다시 꿈꾸네' 같은 넘버는 처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된다.

총합하면 '극장 앞 독립군'은 가상의 홍수가 넘치는 온라인 시대에 극장에 도사리고 있는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고난과 위로, 걱정과 희망이 명멸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100분으로도 충분하지만, 압축된 인물들의 전사를 펼쳐 인터미션이 있는 극으로 만들어도 좋을 법하다. 더구나 2번 공연으로 끝나기에는 들인 공이 너무 아깝다.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산하단체 예술단이 함께 하는 공연을 자주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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