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에리 알안연]베드신 치른 소녀배우들, 이후…

만약 16세의 당신에게 세계적인 감독이 정사신을 요구한다면, 응할는지…. 실제 몇몇 소녀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났고, 과감한 연기로 한순간에 명성을 얻었지만 출세작이 대표작이 되고 마는 케이스가 많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임권택 감독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춘향뎐’을 기획하고 1999년 원전 춘향전의 열여섯살 춘향이 또래의 여학생을 타이틀롤로 발탁한다. 갓 고교생이 된 L양이 주인공으로 뽑혔고, ‘몸이 기억하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맞게 진한 베드신을 연기하게 된다. 이 영화가 이듬해 한국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L은 몽룡 역의 조승우와 함께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린다.
당시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미성년자가 성행위 장면을 연기한 것과 관련,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한창 수치심을 느낄 사춘기 소녀가 가슴노출을 비롯한 섹스연기를 소화해내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다.
더 힘든 것은 무명연기자가 첫 연기로 이만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차기작 선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첫번째 맡은 캐릭터의 이미지가 굳어져 선뜻 캐스팅을 하려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조승우는 뮤지컬로 우회해 차근차근 연기력을 쌓아가며 톱스타 자리를 굳혔지만, L의 자취는 더 이상 찾기 힘들다.
2003년께 한 연예기획사에서 L의 프로필을 발견했는데, 몹시 아쉬웠다. 눈의 쌍꺼풀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많은 연기자들이 택하는 방법이지만, 동양적 마스크로 춘향 역을 따낸 그녀의 고심이 느껴졌다. 이미 영상매체는 서구적 미인들이 점령했고, 그녀가 설 자리가 그리 마땅치 않았던 듯하다. L은 이 기획사가 제작한 KBS 2TV ‘장희빈’에 무수리 역으로 잠깐 얼굴을 비추기도 했으나 이후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다.
2004년 한 기업체가 만드는 대학생 정보지의 인터뷰에 응해 뒤늦게 Y대 법학과에 진학했다며 “당분간은 연기활동 계획이 없다. 국제기구나 국제변호사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힌 것이 마지막이다.
해외에서는 제인 마치가 충격적 데뷔작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했다. 어머니가 베트남과 중국 혼혈로 작은 체구를 지닌 이 소녀는 17세에 거장 반열에 오른 프랑스 감독 장 자크 아노에게 발탁돼 1999년 발표된 ‘연인’에서 과감한 베드신을 펼치게 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사신에 실제 섹스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흥행을 위해 입을 닫은 아노 때문에 제인 마치는 신경쇠약에까지 걸렸다.
2년 뒤에야 할리우드 영화 ‘컬러 오브 나이트’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하게 되나 이 영화는 제인 마치의 섹시한 베드신만 부각시킨 졸작이었다. 그 뒤로 이따금씩 연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허시는 연기를 떠난 로미오 역의 리어나도 화이팅에 비해 연기자로서는 행운녀다. 허시는 불과 15세에 프랑코 제피넬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에 출연하게 되는데, 성숙한 몸매를 뽐내던 그녀의 올 누드가 공개된 이 영화의 런던 프리미어에 법적으로 18세 이하라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아역배우 출신인 허시는 ‘줄리엣’ 후에도 TV시리즈 ‘나자렛의 예수’(1977)에서 성모 마리아 역으로 청순미에 성스러움을 더했고, 2003년에는 국내에도 개봉한 영화 ‘마더 테레사’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건재함을 과시했다. 현재는 딸 인디아 아이슬리가 그녀의 뒤를 이어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소녀배우들이 예술성을 담보한 노출연기로 일순 스타덤에 오르는 것은 성인이 됐을 때 일시적일지라도 정신적 공황을 가져올 수 있음을 고려해야한다. 13세에 데뷔한 독일 출신의 섹시 스타 나스타샤 킨스키는 1997년 W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업계에서 착취당했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만약 누군가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벌거벗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 일들이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았다”고 했다.
킨스키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1979)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16세이던 1976년부터 폴란스키와 애정관계였다. 이듬해 칸영화제에 킨스키를 끼고 나타난 폴란스키는 기자들에게 “내가 어린 소녀들을 좋아하는 것을 숨긴 적이 있느냐”며 큰소리를 쳤다. 당시만 해도 아동 성학대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았지만, 폴란스키는 소녀배우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오랫동안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족이지만, 이러한 예술영화를 예시하며 철 없는 소녀들을 에로영화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악당이 있으므로 주의를 당부한다. 방송인 사유리가 언급했듯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배우가 되고 싶느냐며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소녀들을 현혹해 AV(성인물)를 찍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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