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초대석]최민식, 정확할 수 없어 절망스러운 '이순신'

인터뷰를 "감상문 혹은 반성문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혹은 동료들과 함께 한 작업을 천천히 곱씹어 보는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의 개봉을 앞둔 그의 "감상문 혹은 반성문"은 어딘가에 꼭꼭 숨겨둔 일기 같기도 하고, 하지 못한 넋두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개운하지 못한 고해성사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최민식이 담배를 채 피우지도 못하고 꺼버린 것은 자신이 연기하면서 느낀 감정을 조금이나마 풀어낼 수 있는 이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함으로 보였다.
최민식은 불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그의 연기는 관객의 마음 속을 잿더미로 만들고 나서야 끝났다. 또렷이 기억하는 '쉬리'(1999)의 '박무영', '파이란'(2001)의 '강재', '취화선'(2002)의 '장승업', '올드보이'(2003)의 '오대수', '악마를 보았다'(2010)의 '장경철',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최익현'이 그랬다.
하지만 '명량'의 '이순신'은 감정이 함몰된 인간이다. 칠천량에서의 대패, 패잔병, 12척의 배, 백의종군, 임금의 불신, 초토화되고 있는 조선, 곧 들이닥칠 330척의 왜선. 이순신은 고독하고 외롭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감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이순신은 감춘다. 극중 이순신이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는 장면은 최후의 보루 '구선'(거북선)이 불탔을 때(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뿐이다.
최민식은 녹이 슬어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한 인간의 마음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바람 앞의 작은 촛불처럼 전한다. 위태로운 그의 촛불은 관객의 마음을 잿더미로 만드는 게 아니라 조용히 달궈 결국 뜨겁게 불태운다.
"아직도 제 연기에 확신이 서지 않아요. 찜찜한 기분입니다."

"만약에 이순신이라는 사람이 허구의 인물이라면, 그의 영웅적 면모가 만들어진 이야기라면, 제가 이러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상상하면 되잖아요. 연기란 그런 거잖아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15년 동안 감금당했는데, 15년을 감금당한 사람의 마음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합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제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자유롭게 연기하면 그게 정답이었어요. 하지만 이순신을 연기하는 건 그런 게 아닌 겁니다."
출연을 결정한 최민식은 이순신과 관련된 서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순신이 왜란 당시 쓴 '난중일기'를 기본으로 김한민 감독이 추천한 책 여러 권을 펼쳐놓고 이순신을 해석해나갔다. 하지만 최민식은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막막해졌다"고 고백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순신의 이름 앞에는 '성웅(聖雄)'이라는 말이 붙는다. 영웅인 것도 모자라 '지와 덕이 뛰어나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영웅이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게 다 사실이라는 게 더 놀라웠던 겁니다. 도무지 어떻게 연기해야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일기를 썼잖아요. '난중일기'요. 일기라는 게 뭡니까. 나만 보는 매일 매일의 기록이잖아요. 그걸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건 아닐 거 아닙니까. 그게 거짓이겠냐는 겁니다."
당시 조선은 절망스러웠다. 6년 동안 왜구의 침략이 반복됐고, 조선군은 대부분 패했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온 1597년은 더욱 그랬다. 이순신이 데리고 있던 병사들은 말 그대로 패잔병이었다.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패하면서 겨우 12척의 배만 남아 있었다. 왜군은 기세를 올렸다. 330척의 배가 서해를 따라 한양으로 가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명량에서 막지 못하면 한양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최민식은 "이런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실천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라고 말한 뒤 "그런 분을 내가…"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이 대배우를 짓누른 것은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팩트에 대한 강박"이었다. 이 위대한 인물의 행동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 그 '사실'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 그게 촬영 내내 최민식을 괴롭힌 부분이다.
"장군님이 뒤돌아 앉아 있고, 저는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말입니다, 1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애원하는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그 분은 뒤도 안 돌아보는, 그런 막막함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저의 그 되지도 않는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 정말 절망적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 있었던 그분의 음성, 손짓 하나하나, 표정, 이런 것을 상상해낼 능력이 없었어요."
연기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는 최민식이 위안을 받은 건 동료 배우들의 헌신적인 연기다. 그는 "이 영화에 등장한 모든 배우가 다 미쳐서 연기했다"고 전했다.
"영화를 보면, 전투를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진지를 다 불태운 뒤 군사들을 불러 놓고 연설을 하잖아요. 그 장면이 참…. 연설하는 제 얼굴을 잡으면 저를 보고 있는 부하들의 얼굴은 안 보이잖아요. 뒷모습만 보이고요. 보통은 그럴 때 그냥 멍하게 서있어요. 그런데 그 배우들이 다 저를 집중해서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마치 실제로 전투에 나가는 군인처럼 말이에요. 다들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찌릿찌릿한 게 오는 겁니다. 고경표가 눈물 흘리잖아요. 그건 진짜에요. 가짜가 아닙니다. 동료 배우들의 그런 모습이 저에게 도움을 많이 줬어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감추자'는 거였습니다. 군인이고, 장수니까요. 하지만 가슴 속에는 명량처럼 회오리가 치는, 속이 그랬을 겁니다. 그 격랑이야 말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밤을 지새울 정도의 스트레스였을 것 같아요.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고. 하지만 안으로, 안으로 삭이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장군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인물로 이순신을 그렸기 때문에 아주 미세한 눈빛에 집중했다. "미세한 눈빛, 그 디테일을 표현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분의 그 말도 안 되는 집착을 눈빛에 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한숨) 뭐랄까, 정확하게 하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정확하게요. 그런데 왠지 내가 하는 건 진짜가 아닐 거라는 자책이 들더라고요."
이순신을 연기한다는 것은 말만 들어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굳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려운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최민식이지 않은가.
"술 마시고 그런 거죠. 술이 문제야"라며 웃으며 답했다. 아들 '이회'(권율)와 술을 마시며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이라고 말한 것처럼 최민식 또한 술을 마시고 이순신을 연기해야한다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꿨는지도 모른다.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순신의 이야기를 알려서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서로 그런 것에 가슴이 뛰고 뭔가 치밀어 오르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관객도 진지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다들 지루한 것에 대한 강박이 있기는 하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제 여유가 있어야 해요. 한 인간에 대한 탐구랄까, 좀 거창하긴 합니다만 그런 게 있어야죠. 그런 의미에서 '명량'은 하나의 단초가 될 겁니다. 앞으로 이런 영화가 더 나와야 해요."
'명량'은 최민식의 배우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상상력을 동원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는 연기라는 행위가 그분의 위대함 앞에서 얼마나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존재감에 초라함을 느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영광이기도 하겠죠. 결론은 '까불지 말자',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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