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美최초 흑인하원의원 레이니, 의사당에 '레이니실' 설치돼

등록 2022.02.04 09:37:4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무학의 노동자 출신

KKK단 살해위협에도 4선 하원의원으로 일해

[워싱턴= AP/뉴시스] 미 의사당에서 2월 3일 열린 미국 최초의 흑인 하원의원 조셉 레이니 의원실 현판식에서 하원 공화당 원내 대표 휩 제임스 클라이번 의원이 그의 초상화 옆에서 축하 연설을 하고 있다. 1832년 노예제도 시대에 태어난 레이니 의원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남북전쟁 후에 하원의원에 당선돼 흑인과 인디언 원주민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다. 

[워싱턴= AP/뉴시스] 미 의사당에서 2월 3일 열린  미국 최초의 흑인 하원의원 조셉 레이니 의원실 현판식에서 하원 공화당 원내 대표 휩 제임스 클라이번 의원이 그의 초상화 옆에서 축하 연설을 하고 있다. 1832년 노예제도 시대에 태어난 레이니 의원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남북전쟁 후에 하원의원에 당선돼 흑인과 인디언 원주민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다.  

[서울=뉴시스] 차미례 기자 = 1832년 노예제도 당시 태어난 미국 최초의 흑인 하원의원 조셉 H. 레이니를 기리는 행사가 3일(현지시간) 의사당 안에 그의 이름을 딴 방이 공식 설치되면서 열렸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  여기에는 미 의회 주요 고위직들과 레이니의원의 후손 한 명이 참석했다.

미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제임스 클라이번의원,  레이니의 고손녀 로라 레이니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인종평등과 흑인 투표권을 위한 전쟁을 계속해서 조셉 레이니의원의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검은 양복에 턱수염을 기른 레이니 의원이 다리를 겹치고 앉은 초상화를 옆에 두고 주요 인사가 간단한 연설을 하는 것으로 간소하게 끝났다.  이 행사는 흑인 역사의 달 (  Black History Month )인데다가 공화당이 주지사인 여러 주에서 소수 취약층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투표제한 입법이 이뤄지고 있는 시기에 거행되었다.

레이니의원 처럼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한 흑인 지역구 출신인 클라이번 의원은 "나도 아이들이 있고 손자들도 있다. 이들이 모두 나처럼 미국을 조국으로 여기고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클라이번은 19세기에도 자신의 고향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 8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지만 " 8번째 의원과 9번째 의원 사이에 95년의 간격이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9번째가 1992년 처음 당선된 클리아번 자신이라고 했다. 
 
고손녀인 레이니는 " 조셉 레이니 의원이 당대에 성취할 수 있었던 일이라면,  여러분도 그 일을 이어받아 할 수 있다"면서 "레이니의원을 기리는 지금에도 그 분이 목표로 했던 일, 위험속에서  평생을 바쳤던 그 일을 오늘날에도 유업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레이니 이름을 달게 된 소박한 사무실은 의사당 2층에 있는 방으로 전에 그가 일했던 하원 인디언문제 위원회의 사무실이었던 방이다.  이 방 문 바깥 쪽에 레이니 이름의 현판이 붙여졌다.

현재 보좌관들이  이 사무실을 쓰고 있는 하원 공화당 원내 대표 휩 스티브 스캘리스( 루이지애나주) 하원의원은  레이니에 대해서 " 이 이름은 그냥 여기 붙여진 것이 아니다.  그 분이 해냈던 것 같은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 내라는 의미이다"라고 축사를 했다.

레이니 의원은 정식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찰스턴 주변에서 남부연합의 요새 건축 노동에 강제로 동원되었다가 나중에는 북군의 봉쇄를 뚫는 선박에서 선원으로 일했다.

그 뒤에 영국령 버뮤다 섬으로 탈출했다가 1866년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돌아와서 주 공화당 창건에 조력했다.  하원의원이 된 것은 1870년 12월 사임한 의원의 보궐선거에 당선 되면서였다.

그 후 4선을 거듭하면서 남북전쟁 재건 시대에 일했던 레이니의원은 1871년 4월에 연방정부의 힘이 남부에까지 확대되었을 때 큐클럭스 클랜(KKK) 법을 지지하는 연설을 최초로 했다. 

함께 일했던 다른 13명의 흑인 의원들은 모두가 공화당 소속이었다.
 
 그는1871년 KKK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  "너의 멸망은 붉은 피로 봉인되었다"는 빨간 잉크로 쓰인 협박장이 다른 흑인 의원들에게도 전해졌고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레이니 의원은 노동자, 이민,  노예출신 빈민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면서 미국 원주민의 지역 자치 행정부 수립을 돕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아메리카원주민 보호구역을 위한 예산안 토론을 감독하는 등 하원의 중책을 맡아서 일하다가 1887년 말라리아에 걸린지 5개월만에 55세로 사망했다.

톰 라이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레이니의원이 자란 조지타운 마을은 자신의 조부도 바로 그 근처에 살았던 백인 마을이었다면서 "그가 극복해야 했던 장애와 온갖 압력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고 되물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