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이야기④]당구장에서 잡은 기회 '럭키크림'의 성공

태풍이 오는 것도 모르고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으악! 이대로 배가 뒤집힌다!”
통통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바로 눈앞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성난 괴물 같은 파도가 금방이라도 배를 덮쳐 모두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강심장이라고 소문이 난 구인회 역시 두려움에 휩싸였다.
“모든 걸 하늘에 맡길 수밖에! 하늘이 돕는다면 살아남을 것이고… 안 그러면….”
구인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파도가 배를 덮치고야 말았다.
그 순간,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아아!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그러나 다시 눈을 뜬 구인회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파도는 구인회가 탄 통통배를 훑고 그냥 지나갔다. 그렇게 집채만 한 파도와 싸우기를 수십 번, 드디어 바다가 조금씩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와! 이제 살았다.”
구인회는 그저 자신이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 구인회가 있던 지역에 태풍이 지나가고 있었다.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일기 예보 시스템이 없었으니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태풍이 오는데도 구인회가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간 이유는 대마도에 가기 위해서였다. 해방 후, 구인회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자 부산으로 사업처를 옮기고 ‘조선흥업사’라는 이름으로 생활필수품을 조달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뚜렷한 재미를 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목탄 장사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숯을 구하기 위해 대마도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구인회는 태풍에 휩쓸리는 바람에 대마도 대신 일본의 후쿠오카에 배를 댔다. 당시 후쿠오카는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처참한 모습만 남아 있을 뿐 숯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허탕을 치고 돌아갈 수는 없어 구인회는 삽, 곡괭이 등 농기구 얼마를 사 가지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고생했던 대가치고는 너무도 보잘 것 없는 결과였다. 이듬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딸과 결혼했던 맏사위가 해방 후 혼란한 틈바구니 속에서 사고로 죽었다. 구인회는 혼자 남아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딸을 생각하며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평소 인화(人和, 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함)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구인회였기에 맏사위의 죽음은 청천벽력(靑天霹靂,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일었다.
<당구장에서 잡은 기회, 크리무>
“참으로 큰일입니다. 더 큰물에서 놀려고 부산에 온 건데 이게 뭡니까?”
구인회의 아우 구정회가 한탄을 쏟아 놓았다. 구인회는 부산으로 사업처를 옮긴 후 아우인 구정회, 구철회 그리고 허준구(구철회의 맏사위)와 함께 사업을 벌이기로 했으나 마땅한 사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는 건 시간이었다. 구정회는 당구장을 들락거렸다. 그런데 거기에서 기회를 잡게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화장품 크림?”
구정회가 당구장에서 사귄 친구 가운데 김준환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흥아화학공업사에서 ‘아마쓰크리무’라고 하는 화장품 크림을 만드는 기술자였다.
“네, 흥아화학공업사에서 만든 화장품을 우리는 팔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구인회는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화장품 크림은 지금 일제하고 미제가 판을 치고 있는데 국산으로 승부를 걸어도 될까요?”
구철회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심의 눈초리를 던졌다.
“아니, 품질만 좋다면야 국산이라도 한번 해볼 만하지!”
“그 친구가 품질 하나는 자신 있다고 합니다.”
구인회는 품질에 자신 있다는 말에 해보자는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당장 화장품 500타를 사서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는 마침 아우인 태회와 평회가 학교에 다니고 있어 감격스러운 상봉을 할 수 있었다.
구인회는 이튿날부터 남대문 시장 등에 화장품 가게를 돌며 크림을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가 지도록 사겠다는 가게가 단 한 군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종로에서 고향 사람이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그는 고향 진주에서 장사를 할 때 구인회가 도와준 적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구인회는 그에게 가지고 온 화장품 전부를 대신 팔아달라며 맡기고는 그대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를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고향 사람은 구인회를 배신했다.
조금씩 화장품이 팔렸는데도 구인회에게 제때에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구인회는 몹시 언짢았다. 그 뒤로는 사람을 대할 때 더욱 신중을 기했다.
얼마 후 상심하고 있던 구인회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형님, 지금 막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아우 구태회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종로 가게에서 물건을 산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이곳저곳에서 주문이 밀려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화장품 근처에도 못 가봤던 아낙네들이 해방이 되자 너도나도 화장품을 바르는 것이 유행이 되어 화장품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졌다.
특히 구인회가 팔았던 화장품은 일제나 미제보다 가격이 훨씬 쌌기 때문에 인기가 더욱 높았다. 마침 매서운 겨울바람까지 불어 닥치면서 화장품을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는 풍경까지 연출되었다. 구인회의 아마쓰크리무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럭키크림의 탄생>
“우리 회사 크림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겠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행운을 주는 크림…. 럭키크림이 어떻습니까?”
“와! 그거 좋군요!”
구인회는 화장품 사업이 탄탄대로가 되자 아예 크림 제조 기술자인 김준환과 함께 공장을 설립하고 자체적으로 크림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김준환의 기술을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럭키크림’이 탄생하였다. 구인회는 ‘락희화학공업사’로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즐거울 락(樂)’에 ‘기쁠 희(喜)’자를 붙여 이름을 만든 것이다.
럭키크림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른 회사 제품보다 두 배나 비싼 가격에 내놓아도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교사 일을 하는 장남까지 퇴근 후 공장에 나와 일을 도와줘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다. 럭키크림은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맞았다. 너무 잘 팔려서 문제였다. 물건이 너무 잘 팔리다 보니 원료가 모자랐다.
크림을 적당히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글리세린(의약품, 화장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 무색의 투명한 액체)을 섞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글리세린이 바닥이 났다.
기술자였던 김준환은 글리세린 대신 글리콜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글리콜을 섞어 럭키크림을 만들어 냈는데 이렇게 팔려나간 럭키크림이 문제가 되었다. 묽은 반죽처럼 되어 사용하기도 불편하고 제품의 질도 떨어진다는 불만이 들어왔다.
깜짝 놀란 구인회는 당장 크림 한 통을 집에 가져와 아내에게 발라보라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피부가 따갑다고 아우성쳤다. 구인회는 당장 생산을 중단하고 이미 나간 제품들까지 모두 거둬들이라고 지시를 내렸다.
관건은 글리세린이었다. 그것만 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터인데 도무지 글리세린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간 그동안 쌓아 올린 럭키크림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구인회는 백방으로 글리세린을 구하러 다녔다. 김준환도 글리세린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머리를 짜내며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글리세린을 구할 수 없었다. 상황이 악화되면 엄청난 돈을 투자해 만든 락희화학공업사의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종일 글리세린을 찾아다니느라 점심까지 쫄쫄 굶은 구인회는 허탈한 마음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한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누가 자기를 알아보나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그는 다름 아닌 고향의 지인이었다. 구인회는 반가운 것도 잊은 채 혹시나 하고 글리세린 이야기를 꺼냈다.
“아, 글리세린 말입니까. 그거라면 우리 창고에 열여섯 드럼이나 있는데!”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여기서 구세주를 만나다니! 구인회는 그렇게 가까스로 글리세린으로 인해 불어닥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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