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9월 90명 첫 입학했지만…'서울대 미술대학 옛 모습들'

【서울=뉴시스】▲미술대학 합격자 발표 ┃ 1956년 3월 오후 2시 ▲입학 기념 그룹사진 ┃ 1957년 ┃ 서울대학교 조형연구소 소장
그 해 9월 18일, 예술대학 미술부 1회 입학생 총 90여명이 선발됐다. 서울대 미술대학 시초다. 미술부는 당시 대학본부, 문리과 대학, 법과대학과 함께 '동숭동 시대'를 열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대학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전쟁이 끝나고 1953년에 서울 캠퍼스(이화동)로 복귀했다. 1963년 4월에는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미술대학 교사를 연건동 수의과대학 자리로 옮겼고, 1972년에는 태릉 공릉동 캠퍼스(공과대학 내 교양과정부 건물)로 이전, 1976년에 현재의 관악 캠퍼스로 자리를 잡게 된다.
1950~60년대 서울대 미술대학 태동기의 모습을 담은 '사진(寫眞)하다: 미술대학의 옛 모습들'전이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다. 서울대학교 개교 70주년 기념 사진전 2부다.

【서울=뉴시스】임응식 선생의 사진 수업 ┃ Photo courtesy 성낙인
미술대학 교사가 이화동에 있었던 시절에는 낭만이 있었다. 학생들은 미술대학 근처 대학천을 ‘세느강’이라 불렀으며, 그 위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미술대학 근처에 있던 ‘학림다방’은 당시 대부분의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막걸리를 팔던 ‘쌍과부집’이나 ‘부로크집’, 중식집이었던 ‘진아춘’ 등도 학생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사진 속에는 6.25동란 후 어두운 시대 상황 속에서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 청년기의 학생들이 보인다. 이제는 다시 마주칠 수 없는 젊은 시절의 그들이 사진 속에서 ‘현재’로 등장하고 있다.

【서울=뉴시스】이화동 시절, 미학과 강의실 앞에서 남학생들이 탁구치는 모습 ┃ 조소과와 미학과의 모임장소로, 이곳에서 미술대학 연극반이 태동하기도 하였다.
서울대미술관은 "70년 역사 동안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은 세계적 인지도를 가진 작가들을 배출해 냈다"며 "그러나 명망 있는 작가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나머지 인물들에도 관심을 두려 한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예술가가 되기를 포기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미술사를 재조명해보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미술대학은 1946년 1회 입학생으로 90명이 들어왔지만, 6.25전후에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아 한 과의 졸업생은 겨우 2~3명에 불과했다. 그 결과 미술대학의 첫 번째(1950년) 졸업생은 겨우 11명뿐이었다. 사회가 안정을 찾기 시작하면서 차츰 졸업생의 숫자도 증가하여, 1965년도에는 석사 졸업생 2명을 포함하여 총 12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모델 수업 광경
이 기록사진에는 1953년부터 65년까지 미술대학의 모습이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미술대학 신입생들의 초상사진부터 실기실 풍경, 스케치 여행 사진, 입학식 및 졸업식 광경까지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사진속 인물과 그의 작품을 함께 전시해 이미지 속 사건이나 인물 등이 과거에 존재했었으며, 허구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다. 강광, 곽훈, 김병기, 김인중, 김종영, 김차섭, 김흥수, 노수현, 민병옥, 박세원, 백태원, 성낙인, 송병돈,숨결새벌, 심현삼, 오경환, 이계안, 이순석, 이종상, 장발, 장상의, 장우성, 최욱경등 총 23명의 사진 회화 조각등이 전시됐다.

【서울=뉴시스】적성감위 축출 운동 시위(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소장).적성감위 축출운동은 1955년 8월부터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로, 유엔 결의에 따라 온 휴전 감시단 중 공산주의 국가의 감시단원들의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였다. 그러나 정작 이는 관제 시위로, 이승만 정권이 학생들을 강제 동원하여 시위를 조장하였던 아픈 역사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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