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최승희, 노래도 불렀다…음반·영상 최초발굴

신나라레코드는 18일 "최승희 탄생 100년을 맞아 그녀의 작품 전기와 중기, 후기를 모두 담은 총괄편을 24일 발매한다"며 "그동안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월북 후의 모습과 공연 영상, 노래 등이 담겨 있어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최승희가 1946년 북으로 넘어간 이후의 이 자료들은 1961년 일본 사회당(현 사민당)의 호아시 게이 의원이 최승희무용단을 일본으로 초청하기 위해 방북, 최승희에게서 받은 것들이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최승희 관련자료는 주로 월북 이전의 것이었다.

또 "최승희는 아리랑을 세계에 알린 한류 1세대다. 헤밍웨이, 피카소, 찰리 채플린 등은 세계를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인 무용가라고 최승희를 극찬했다"며 "최승희의 예술 세계와 활동상이 재조명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가수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최승희의 노래 3곡이 실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승희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반도의 무희'의 주제가 '향수의 무희'(작·편곡 최승희), '반도의 무희'의 또 다른 삽입곡 '축제의 밤', 그리고 최승희가 우리말로 불러 녹음한 유일한 곡인 '이태리의 정원' 등이다.

DVD에서는 가무 '물동이춤' '방아 찧는 춤'과 군무 '장미춤' '부채춤', 독무 '장고춤' 등을 추는 최승희를 볼 수 있다. 책에는 최승희의 작품 세계와 활동상이 정리돼 있으며 그녀와 함께 월북, 최승희무용단을 이끈 각계 인사들의 프로필과 무용곡 친필악보 등을 실었다.

강원 홍천 출신인 최승희는 19세 때인 1929년 서울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했다. 조선의 정취를 담은 '봉산탈춤' '칼춤' '승무' 등 근대무용을 선보이며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기에 신무용이라는 춤 사조를 창출한 선구적 인물이다. 1930년대 후반 한국 춤의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무대에 떨쳤으며 중국의 매란방, 인도의 우다이 상카르와 더불어 아시아 출신 세계적인 무용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요구로 만주, 남경 등지로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닌 이력 탓에 훗날 한국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1947년 월북, 김일성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세우고 무용극 창작에 주력하면서 초기 북한무용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58년 남편 안막의 몰락과 더불어 최승희 역시 1960년 이후 숙청됐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2003년 북이 방송을 통해 사후 복권됐다고 발표했다.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된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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