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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정민이 원하는 영화

등록 2025.09.16 0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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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신작 '얼굴' 임영규·임동환 연기해

제작비 2억원 최소 규모…노개런티 출연

"영화하려고 했던 이유 다시 환기해줬다"

최소한의 촬영에도 "집중력 올라 더 좋아"

[인터뷰]박정민이 원하는 영화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힘들다거나 어려운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제작비 약 2억원. 1인2역. 촬영 기간 13회차. 게다가 출연료 없음. 상황이 이러한데 힘들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배우 박정민(38)은 수 차례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았다고 했다. "대학교 때 우리끼리 영화를 만들던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달까요."

지난 11일 공개된 연상호 감독 신작 '얼굴'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 제작됐다. 2억원은 독립영화 중에서도 작은 규모이고, 투자사와 배급사 없이 일단 제작사가 제작비 전액을 들였다. 규모는 사실상 최소 단위인데 각본과 연출은 1000만 감독인 연 감독이고, 주연 배우는 같은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 박정민이다. 단순히 독특하다거나 이례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을 정도로 대담한 도전이자 변화다.

"감독님께선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저한테는 무언가를 바꿔보려는 도전 같은 건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자본 통제 하에 촬영하기보다는 더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거죠. 어차피 큰 투자를 받기는 어려운 작품이었고, 애매한 투자를 받기보다는 우리끼리 해서 결과물을 내보려고 한 겁니다. 관객 기호에 맞추기보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이 40년 전에 실종된 아내이자 어머니인 '정영희'의 백골 사체를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맹인인 남편도, 어려서 헤어진 아들도 모르는 여자의 얼굴을 둘러싼 진실이 드러난다. 박정민은 젊은 임동환과 아들 임영규를 연기했다.

박정민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를 처음 하고 싶어했을 때 마음들을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이 작품 원작은 연 감독이 2018년에 내놓은 동명 그래픽노블이 원작. 진작에 원작을 읽어서 내용을 알고 있던 박정민은 제안을 받자마자 하겠다고 했단다.

"영화가 너무 좋고, 영화를 너무 하고 싶어 하던 시절에 생각했던 게 이런 거였어요. 사람들한테 질문을 던지고, 메시지도 남기고, 토론하게 하는 영화 말이에요.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그런 작품을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우연찮게 '얼굴'을 만나게 되니까 영화를 하고 싶어할 때 그 마음이 환기가 되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만들었으니까 힘들지도 않고 어려운 것도 전혀 없었어요."
[인터뷰]박정민이 원하는 영화


'얼굴'은 다층적이다. 괴물 같이 못생겼다는 한 여자의 사연을 발굴해 그 비밀을 드러내 보인다는 식의 장르적 요소가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고도 성장과 뒤엉켜있는 빛과 그림자가 있으며, 한 인간이 일생을 바쳐 매진한 일에 얽힌 미와 추가 있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 똬리를 틀고 앉아 도무지 비켜 날 생각이 없는 편견과 억압도 있다. 이 모든 층들이 임영규·임동환·정영희의 역사에 담겨 있으니 임영규와 임동환을 모두 연기한 박정민이 만만치 않은 연기를 해야 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게다가 제작비 여건상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촬영을 마쳐야 했다. 그런데 박정민은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여러 번 촬영하면서 연기를 발전시킬 순 없었어요. 웬만하면 한 두 테이크 안에 해결하고 다음 장면을 찍어야 했거든요. 대신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고 촬영 중간에도 우리 영화와 연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했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최대한 집중한 상태였고요. 컴팩트한 게 좋았습니다. 사실 오래 찍다보면 늘어지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도 있거든요. 갑자기 연기에 대한 계산이 안 될 때도 있고요."

준비 기간과 촬영 기간 모두 짧았는데 박정민은 그 사이에 도장 파는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실제 도장 장인에게 사나흘 정도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어설프긴 한데 도장 만들 수 있을 정도는 돼요. 누군가한테 선물해주면 '우와' 할 정도요. 하지만 인감을 만들 정도는 안 됩니다.(웃음)"

'얼굴'은 나흘 간 33만명이 봤고, 157개 나라에 판매돼 손익분기점을 이미 훌쩍 넘겼다. 게다가 지난 14일 폐막한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전 세계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일단 성과가 있으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그런 것보다도 이 영화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는 게 참 좋아요."

박정민의 차기작은 오는 12월 국내 관객을 만나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 공연 '라이프 오브 파이'다. 스페인 소설가 얀 마텔이 2001년 내놓은 동명 소설이 원작이고, 2012년 이안 감독이 영화로도 만든 적도 있다. 박정민이 무대에 오르는 건 2016∼2017년 상연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8년 만이다. 박정민은 이 뮤지컬을 선택한 이유를 "근사했다"고 표현했다.

"원래 무대에 다시 설 생각이 없었어요. 8년 전에 공연하고 다시 안 하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라이프 오브 파이' 공연 실황을 유튜브로 봤는데 좋더라고요. 저는 원래 도전하겠다는 생각으로는 작품을 선택 안 하지만 이것은 도전해보려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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