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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 짐 될까 공원으로"…가정의달 더 외로운 노인들

등록 2026.05.10 09:00:00수정 2026.05.10 09: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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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 다 바쁘지"…가족보다 공원 택한 노인들

무료급식소엔 수백명…끼니 주는 동선 따라 이동

"노인 관계 빈곤 심화…여가·교류 공간 확대해야"

[서울=뉴시스]안태현 인턴기자=지난 6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종묘시민광장에서 수십명의 노인이 장기와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 2026.05.0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안태현 인턴기자=지난 6일 오후 찾은 서울 종로구 종묘시민광장에서 수십명의 노인이 장기와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 2026.05.0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다솜 기자, 안태현 인턴기자 =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나오는 거지.”

지난 6일 찾은 서울 종로구 종묘시민광장. 나무 그늘 아래 바둑판 앞에 앉은 김영기(76)씨는 바둑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아침 일찍부터 이곳을 찾은 김씨는 홀로 살고 있다.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특별한 계획은 없다. 자녀와 가끔 연락은 하지만 부담이 될까 봐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드물다. 김씨는 "여기가 최고"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하반기 탑골공원 내 장기와 바둑판이 철거되면서 종묘시민광장은 노인들의 새로운 거점이 됐다. 오전 10시께 공원 관리자가 바둑판과 방석을 깔기 시작하자마자 공원 곳곳에는 바둑과 장기를 두는 노인 수십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툭툭 돌 놓는 소리와 담배 연기, "거기 두면 안 되지"라는 훈수가 뒤섞였다.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몰린 가정의 달이지만 이곳 분위기는 가족의 온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원을 찾은 노인들은 "자녀들도 바쁘다", "집에 혼자 있으면 답답하다", "갈 데가 없어 나온다"고 입을 모았다. 

바둑 구경을 하던 이재도(72)씨는 "집에서는 혼자 있으니까 갑갑하다"며 "혼자 있으면 쓸쓸하니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와 연락은 하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고 했다. 

공원 벤치에서 햇볕을 쬐며 앉아있던 전중길(78)씨도 "손자들이 보고 싶다"면서 "외로움은 어느 나라 누구나 다 있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다들 바쁘니까 자주 못 만나지 않느냐"며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근육도 굳으니 운동 삼아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안태현 인턴기자=지난 6일 오전 11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노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2026.05.0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안태현 인턴기자=지난 6일 오전 11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노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2026.05.08 [email protected]


오전 11시께 이른 점심시간이 되자 종로구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는 담벼락을 따라 수백 미터의 줄이 늘어섰다. 새벽부터 집을 나서 이곳 인근에서 나눠주는 아침 주먹밥을 챙기고, 다시 점심 줄을 서는 것이 이들의 일과다.

무료급식소 앞에서 만난 김모(82)씨는 매일 오전 10시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토요일도, 설날도, 크리스마스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늦게 오면 줄이 길어진다"며 "앞 쪽에 서려면 일찍 나와야 한다"고 했다.

김씨의 하루는 끼니 동선에 맞춰 흘러간다. 오전에는 주먹밥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점심은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다. 저녁은 점심 때 받은 도시락을 남겨 먹거나 다른 단체가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아 해결한다.

50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김씨는 "장가 못 간 아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며 "그 아들 하나 데리고 사는 게 내 업보"라고 말했다. 가정의달 계획을 묻자 "요즘은 그냥 무덤덤하다"며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거지, 내일 가나 모레 가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이곳에서 만난 노인들은 가정의 달이지만 자녀와의 만남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 80대 노인도 "손주가 오면 용돈을 줘야 하지 않느냐"며 "요즘은 1만원으로도 안 된다.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들은 출가해서 잘 만나지 않는다. 어버이날도 이곳에 올 것"이라고 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하루 평균 300명 정도가 식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식사를 마친 노인들에게는 후원받은 빵도 나눠졌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사회 속 노인 고독과 관계 단절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가족 중심 분위기가 강조되는 가정의 달에는 소외감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버이날 같은 시기에는 관계 빈곤이 심한 노인들이 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며 "노인 빈곤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데다 관계를 맺을 공간과 방식도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나이가 들수록 여가 시간은 늘어나는데 갈 곳과 할 일이 부족하다"며 "혼자 사는 노인이 증가하면서 고립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인복지관의 수요를 맞추지 못하는 현재의 인프라를 확충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대안적 공동체 형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노인들이 관계를 맺는 공간과 방식이 다양화돼야 하며, 복지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인들을 위한 보편적 접근권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석 교수는 "복지관을 이용하는 일부 노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여가·교류 공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 역시 "노인 빈곤과 건강, 여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며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과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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