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예술품, 활자를 만나다…'활자의 나라, 조선'

활자는 11세기 중국 송나라에서 필승(?~1051)이 처음 발명했지만, 흙을 구워 만든 탓에 실용화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활자의 재료를 금속으로 대체해 활자 인쇄를 본격화한 것은 고려(918~1392)였다. 하지만 고려는 한자라는 문자의 특성이나 서구와 다른 역사적 배경으로 활자 인쇄술을 발명하고 근대를 여는 혁신적인 매체를 선도하는 영예를 구텐베르크(1398?~1468)에게 내주었다.
조선(1392~1897)은 다양한 책들을 인쇄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를 발전시켰다. 통치를 위해 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활자를 제작했다. 1403년(태종 3)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면서 태종이 한 말에서 이러한 의도가 잘 드러난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책을 널리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외에 있어 중국의 서적이 좀처럼 오지 않고 판각본은 훼손되는 데다가 또 천하의 온갖 서적을 다 판목으로 새기기는 어렵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실 1층 고려 3실에서 21일 개막한 ‘활자의 나라, 조선’ 전은 조선시대 국가 제작 활자 82만여 자의 전모를 만날 수 있는 자리다.
9월11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에서는 박물관이 소장한 활자 82만여 자 가운데 8만여자를 선별해 보여준다. 대부분 17~20세기 초 조선시대 인쇄 출판 담당 관청인 교서관 등에서 국가나 왕실에 필요한 책을 만드는 데 사용된 활자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조선시대에 활자를 사용하고 책을 찍었던 사람들이 활자를 어떻게 분류하고 보관했는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전시”라며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을 수 그분들만의 독특한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이 연구관에 따르면 조선시대 활자 제작 횟수는 대략 금속활자 30여 회, 목활자 30여 회다. 이 중 금속활자는 국가 주도로 제작됐다. 목활자도 국가 주도로 제작된 것이 많다. 그러나 민간에서 만든 목활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연구관은 “조선시대 제작한 활자가 다 남아 있지 않는 것은 전란이나 화재로 유실된 것들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나무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금속활자라도 오래되면 표면이 닳아 제대로 인쇄를 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다”며 “이때 기존에 사용하던 금속활자를 녹여 새 활자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책에 남아 있지만 활자는 남아 있지 않은 예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중앙 8×1.5m의 면적에는 활자를 보관했던 옛 서랍에 넣은 활자 5만 여자를 펼쳐놨다. 활자의 의미와 활자장 조사,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물도 설치했다. 박물관 소장 활자를 활용한 사자성어 게임을 즐길 수 있고, 3D 프린트로 출력한 활자 복제품을 만져볼 수도 있다.
이 연구관은 “조선시대 활자는 인쇄 도구라는 의미를 넘어 유교 정치의 상징이며 당대 기예(技藝)의 정수라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이해와 관심은 아직 피상적”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시대 활자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박물관 소장 활자 82만여 자 중 금속활자는 약 50만 자, 목활자는 약 30만 자다. 한글 금속활자는 750여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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