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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아들' 41년째 기다린 노모 "이산가족 상봉 한 번만"

등록 2018.05.07 12: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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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8월 "송도 다녀오겠다" 마지막 아들 모습 고통

백방으로 수소문… 남편은 전국 찾아헤매다 투병 사망

안기부 통해 납북·생존 사실 알았지만 연락 꿈도 못 꿔

'판문점 선언' 이산가족 상봉할 분위기에 절박한 기대

"자다가 정신 잃을까 걱정… 죽기 전 어떻게든 만나길"

"文대통령 만나서 北하고 잘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전후 납북자 이민교(60)씨의 어머니인 김태옥(87) 할머니가 지난 3일 경기 안양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5.04 s.won@newsis.com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전후 납북자 이민교(60)씨의 어머니인 김태옥(87) 할머니가 지난 3일 경기 안양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5.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부모들은 자식이 집에 들어와야 마음이 놓여. 애가 학교 다닐 때에도 늦게 돌아오면 아주 안심이 안 됐어. 1977년부터면 거의 45년이 다 돼 가네… 어떻게든 죽기 전에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어."

 전후 납북자 이민교(60)씨 어머니 김태옥(87) 할머니는 반백년을 마음속에만 담아둘 수밖에 없었던 단장의 고통을 뉴시스 기자와 만나 어렵사리 꺼냈다. 경기 안양에 거주하는 김 할머니는 희미해져가는 아픈 기억의 조각들을 더듬어가면서 오랜 그리움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김 할머니가 기억하는 아들의 마지막은 "송도를 다녀오겠다"면서 집을 나서는 모습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 갔다가 며칠 뒤 8월15일 해방 기념식 행사에 오겠다던 아들은 그대로 소식이 끊겼다. 김 할머니와 가족들은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봤지만 아들의 소식을 아는 이는 없었다.

 "친구와 송도를 간다고 했어. 군대 갈 날도 얼마 안 남고 그래서, 다녀오라고 아버지 몰래 보냈었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라남도 홍도를 갔다는 거야. 거기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멋모르고 간 거지. 그런데 오지를 않아. 하루, 이틀, 1년, 10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혹시 물에 빠져 죽은 건 아닌지, 어디 섬에 끌려간 건 아닌지 애 찾으러 온갖 곳을 다 가봤어. 그때 우리가 서울에서 망해서 집도 없이 인천으로 이사를 왔었던 거거든. 어려운 시절에 그렇게 된 거야. 그래서 내가 여길 안 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송도면 가깝잖아, 그래서 보낸 건데… 가까워서 안심을 했었는데… 그렇게 간다고 했으면 안 보냈을 거야."

 김 할머니 가족은 작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을까 외딴 섬에서 탈출했다는 사람을 만나보기도 하고, 부산 형제복지원도 찾아가봤다. 하지만 아들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이씨 아버지는 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사업을 그만두고 전국 해수욕장과 산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산에서 굴러 떨어져 신경통이 악화, 1985년 중풍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다가 아들 소식을 듣지 못하고 1989년 끝내 운명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연락도 없고 그래서 물로 갔으니 빠져서 잘못됐나, 어디 납치됐나 그러고 있었지. 신문에 섬에 갇혀 있다가 탈출한 사람이 있다고 하기에 그 사람도 만나러 가봤어. 언젠가는 부산에 사람 잡아다 가둬놓고 일시키고 때리는 데가 있다고 그래서 거기도 가봤어. 큰 아들이 전부 그런 데 이름을 적어다가 주더라고. 그래서 찾아가 봤었지."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전후 납북자 이민교(60)씨의 어머니인 김태옥(87) 할머니가 3일 경기 안양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공개한 이씨의 피랍전 사진. 2018.05.04 s.won@newsis.com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전후 납북자 이민교(60)씨의 어머니인 김태옥(87) 할머니가 3일 경기 안양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공개한 이씨의 피랍전 사진. 2018.05.04 [email protected]

이씨는 1977년 8월11일 전남 홍도해수욕장에서 친구인 최승민(59)씨와 함께 북한 공작원들에게 피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와 최씨는 2박3일 일정으로 해수욕장을 다녀오겠다고 떠난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지난 1997년 12월 이씨와 최씨가 납북돼 북한에서 생존해 있으며, 특수 구역에서 대남 공작원을 교육하는 강사로 살아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금은 아들 물건 다 내버렸어. 옷도 뭣도 아무것도 없어. 밥그릇하고 사진 몇 장이 전부야. 아버지가 보기 싫다고 다 버려버렸어. 아버지는 민교가 어딨는지 모르고 그냥 돌아가 버렸지. 우리 아저씨도 걔 찾으러 경찰 데리고 흑산도로, 홍도로, 제주도로 그렇게 다니셨어. 모르셨지, 모르고 그렇게 돌아간 거야. 건강하셨는데 찾으러 다니고 그러셨는데, 한쪽에… 건강하셨는데 마비가 와서 고생하고 돌아가셨어. 그리고 나중에 가서 우리 민교 찾았어요, 그랬지. 그리고 울었어."

 이씨의 행방은 실종 20년이 지난 뒤에서야 실마리가 잡혔다. 안기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나서야 김 할머니는 아들이 납북됐음을 알았다. 이후 김 할머니는 이씨의 생존을 증언했다는 공작원을 만나 아들의 생존을 확신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아픔을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납북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 때문이었다.

 "안기부에서 연락이 왔어. '이민교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줄 아세요' 그러더라고. 간첩 넘어온 사람이 그랬다더라고. 엄청 울었지. 그때 어떤 국회의원 도움을 받아서 간첩이란 사람을 어떻게 해서 만났어. 그 사람에게 우리 아들 사진을 보여주니 '맞아요. 아들 거기 있어요' 이러더라고. 우리 아들이 북한에서 넘어오는 간첩들을 교육하는 교사로 있대. 대학 가르치고 결혼도 시켰대. 자수한다고 남파는 안 시킨대. 자기도 두 번을 교육 받았대. 나중엔 '나 같은 사람 말고 여기 오고 싶어 하는 사람 데려다가 교육시키라'고 농담도 하더래. 그래서 그랬어. 당신은 여기 말 잘 듣고 꼭 살아남아서 나중에 북한 돌아가라고. 돌아가서 우리 아들한테 엄마 만났다고 꼭 얘기해달라고…."

 김 할머니는 아들이 살아있음을 알았지만, 지금까지 직접 연락 한 번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혹여 북한에 있는 아들이 잘못될까 싶어서였다. 얼굴 보는 것도 꿈꾸지 못했다. 북한에서 피랍을 인정 않는 납북자 가족이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저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면서 40년 가까이 절에서 기원만 드려왔다고 했다.
'납북 아들' 41년째 기다린 노모 "이산가족 상봉 한 번만"

"국가정보원에서 연락 온 적이 있어. 우리 애가 거기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영상편지를 하게 해드릴까요 그러더라고. 그런데 애들하고 의논해보니 그러다가 들키면 큰일 난다 그러대. 살아있는 것 아니까 잘 있는 거 기다리면서 살자고 그랬어. 우린 이산가족하고 달라서 전에 몇 번 상봉이 있었지만 소용없었어. 다른 가족들도 납북 가족은 이산가족하고 다르다, 그랬었지. 납북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뭘 어떻게 잘 못하는 것 같아. 일본에선 다 했잖아. 데려올 사람 데려오고 했잖아. 그전에는 얘기를 해보고 그래도 별 소용이 없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회담하고 그러는 걸 보면 우리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잘 한 것 같아. 기대가 되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이고 그래."

 김 할머니는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형성된 이산가족 상봉 분위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 납북 가족이 아닌 일반 이산가족으로서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아들을 보고 싶다고 되뇌었다. 또 같이 사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면서, 마지막으로 꼭 얼굴 한 번 마주하고 싶다고 거듭 소망했다.

 "이젠 어떻게든 만났으면 좋겠어. 지금 몸도 안 좋고 그러니까, 이러다가 만나기도 전에 죽는가 싶어. 자기 전에도 그냥 정신을 잃진 않을까 자꾸 생각을 해. 지금은 다리도 아파서 절도 못 다니고 밖에 잘 나가지를 못해. 그래도 이번에는 어떻게든 만나야 하니까… 만날 수만 있으면 문 대통령하고 만나서 저쪽하고 좋게 해서 이산가족 만날 때 좀 해달라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대통령이 너무 바빠. 나도 움직이기 힘들고. 이산가족 신청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봤으면 좋겠어. 저쪽에서도 듣기 좋게 납북 이런 말 않고서라도, 좋은 말로 해서 만나야지. 아들하고 같이 사는 거? 가족이 있으니 거기에서 살아야지. 애들도 있을 거 아냐. 가족을 내버릴 수는 없잖아. 그저 만나보고 연락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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