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전용' vs '한자혼용'…헌재, 국어기본법 위헌확인 공개변론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국어기본법이 한글을 전용으로 사용하고 한자 사용을 배제하는 것은 언어를 통한 인격발현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위헌 측 주장과, 국어 발전을 위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언어 인권에 이바지한다는 합헌 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국어기본법 3조 등에 대한 위헌소원 사건 공개변론을 열고 청구인 측과 이해관계인, 참고인들의 입장을 들었다.
공개변론에서는 ▲한글을 고유문자로 정하고 공문서 한글 사용원칙 등을 규정한 것이 어문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초·중등학교 국어 교육과정에서 한자 교육을 배제하는 것이 학생의 인격발현권,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침해하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청구인 측 대리인인 김문희 변호사(전 헌법재판관)는 "한글이 국보 1호의 가치가 있고, 대한민국 산업 근대화 등에 크게 기여한 점은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인간이 만든 제도나 기구 등이 흠 없이 완벽하지 않듯 한글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어기본법은 한자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등 한자를 배제하고 한글 전용 개념에서 출발하고 있다"며 "이는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인격발현권과 학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자가 공교육 과정에서 배제될 경우 사교육에서만 이뤄지게 돼 사회 양극화 현상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한자가 우리 미래세대의 인성을 기르는 데 있어 좋은 요소가 될 수 있는 등 한글과 한자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해관계인인 문화체육관광부 측 대리인은 "대표적 대중매체인 신문은 앞서 1988년부터 한글 가로쓰기로 전환했다"며 "이는 독자들이 원한 것이고, 신문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잡한 권리의무관계를 다루는 법령과 판결문 등에서도 한글이 표기되기 시작했다"며 "설문조사결과 국민 대다수가 이에 호응하는 등 한자를 혼용해 사용하는 것이 국민의 폭넓은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인 측 주장에 반박했다.
이어 "교육 현장에서도 초등학생에 대한 한자 교육은 학습 부담 등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어기본법은 제한하거나 강제하는 것이 아닌 국어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며 "현재 교육과정에서도 합리적 기준을 통해 한자 교육을 적절히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 변론을 귀 기울여 듣던 안창호 재판관은 라틴어와 한자를 비교하며 질문했다. 안 재판관은 "현재 라틴어가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진 사례에 비춰보면 굳이 한자를 어릴 때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청구인 측 대리인은 "우리말 속에 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다"며 "한자 혼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정확한 의미를 버리게 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청구인 측에게 "한자 교육이 한문 교육을 위한 이전 단계인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청구인 측은 "한문 교육까지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한자는 우리말 의미를 정확하게 하고 어휘를 늘리기 위한 필요최소한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심재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한수웅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이건범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와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가 문화체육관광부 측 참고인으로 참석해 양측 주장에 힘을 실었다.
심 명예교수는 "한자 혼용을 통해 균형 잡힌 문화 감각으로 문자에 대한 폭넓은 견해를 가질 수 있다"며 "한글과 한자는 배타적 관계가 아닌 상호적 공생 관계"라고 설명했다.
이정미 재판관은 심 명예교수에게 "학부모의 입장에서 현재 초·중등 교육 과정에서 자율적인 한자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자 심 명예교수는 "공교육 국어 시간에서 한자를 가르치도록 해야 저소득층 가정들도 평등하게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해당 조항은 학교교육과 일상생활에서 한자 사용을 억제하고 한자에 접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안 재판관이 "한자 혼용이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한 교수는 "어려운 질문이지만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면 권 교수는 "국어기본법이 한글을 전용을 하는 것은 한글이 편리하고 자연스러운 글자 생활이기 때문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합리적인 글자 생활을 멈추고 한자혼용을 하는 것은 국력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상임대표는 "한자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개인의 선호에 따라 교육을 선택하는 것이지 강요해선 안 된다"며 "고급 교양 문화로도 볼 수 있는 한자를 모든 국민에게 혼용토록 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도리어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어기본법은 '한글'을 국어로 표기하는 우리 고유문자로 규정하고, 공공기관 등 공문서를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쓰도록 한다.
이에 따라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은 한자 혼용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교육부 고시 등에서도 한자를 초·중등학교 필수 교육 과정에서 배제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2년 10월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와 초·중등학교 재학생·학부모 및 학교 교사 등 300여명은 "우리말의 정확한 이해와 사용을 위해서는 한자 사용이 필수적이다"며 "한자혼용을 금지하고 한글 사용만을 규정한 국어기본법은 어문 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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