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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된 서류, 망가진 삶"…국가 방치에 가슴 멍드는 입양인

등록 2025.04.20 07:00:00수정 2025.04.20 10: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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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은 국가 주도 '시장'…조작된 기록과 상흔

"정보 부족해 제외"…입양인 "그 자체가 증거"

입양인 정체성과 생존권 위협…"국가가 방치"


[서울=뉴시스] 우지은 기자 = 해외입양인 송종근(46)씨가 지난 2일 낮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 앞에서 입양 기록 즉시 공개와 국제 입양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025.04.18. now@newsis.com

[서울=뉴시스] 우지은 기자 = 해외입양인 송종근(46)씨가 지난 2일 낮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 앞에서 입양 기록 즉시 공개와 국제 입양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025.04.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성하 우지은 기자 = #. 1983년, 고아원을 나선 네 살 아이는 비행기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아이는 낯선 여정에 내몰렸다. 고아원에서 함께 출발한 또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아이는 공중전화 앞에서 엄마를 찾으며 번호를 눌렀고, 또 다른 아이는 펜스를 붙잡은 채 울부짖으며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송종근(46)씨도 그중 하나였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 앞. 점심시간 인파 속 송씨는 '입양 기록 즉시 공개'를 요구하며 홀로 섰다. 결연한 표정의 그의 손에는 '위조된 서류, 망가진 삶. 기록을 공개하라' 문구가 적힌 팻말이 들렸다.

송씨는 자신의 입양 기록 대부분이 허위였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입양 당시 서류에서 '진관 송씨'였던 그의 본관은 '한양 송씨'로 바뀌어 있었고, '친부모가 사망해 유기됐다'고 기록됐다.

진실은 달랐다. 송씨의 부모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부친은 송씨가 세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친조부 손에 맡겨졌던 그는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바란다'는 이유로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모친은 송씨의 입양 뒤 재혼했다.

결국 그는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실려 떠났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은 송씨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입양 후 그는 양부모의 아래에서 성장했지만 지난 2011년 고국에 돌아왔다.

입양은 구원의 손길이 아니었다. 그는 입양된 가정에서 학대를 받았다. "널 입양한 것을 후회한다" "없애버리고 싶다"는 식의 폭언과 폭행이 일상이었고, 양부모의 친딸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았다.

송씨는 결국 2009년 성을 바꾸고 양부모와의 관계를 끊었다. 담담하던 송씨는 분노가 차오르듯 서툰 한국어로 "사과 한마디면 용서했겠지만 끝내 사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부모는 그를 '버린' 적 없었지만, 국가는 그를 '버려진 아이'로 만들었다.

입양은 사실상 국가 주도 '시장'…조작된 기록·팔려간 아이들

[서울=뉴시스] 우지은 기자 = 해외입양인 송종근(46)씨가 지난 2일 낮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 앞에서 입양 기록 즉시 공개와 국제 입양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025.04.18. now@newsis.com

[서울=뉴시스] 우지은 기자 = 해외입양인 송종근(46)씨가 지난 2일 낮 서울 종로구 아동권리보장원 앞에서 입양 기록 즉시 공개와 국제 입양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025.04.18. [email protected]


송씨의 사례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의 해외입양은 민간기관 주도로 진행됐지만, 국가의 묵인과 제도적 방치 속에서 구조는 더욱 고착화됐다.

17년 동안 해외입양인들 지원해온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는 "당시 30만명 넘는 아이들이 해외로 보내졌고, 그 과정에서 서류 조작이 만연했다"며 "입양은 처음부터 마켓(시장)이자 산업이었다"고 지적했다.

배 대표는 "스웨덴에서 청소년 자살률 1위를 기록한 집단이 한국 입양아였다는 보고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성공한 입양인의 사례만을 내세워, 좋은 옷을 입히고 화려하게 포장한 채 '입양은 성공'이라는 마케팅만 반복해 왔다"고 구조적 모순을 폭로했다.

입양기관들은 기아신고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아이의 신원을 바꿔 기재하기도 했다. 때로는 숨진 아동의 이름을 다른 아동에게 덧씌워 예정된 입양을 강행했다. 특히 여아의 경우 성범죄자나 약물 중독자 등에게 입양되기도 했다.

국가가 양부모의 신원이나 자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아이를 넘긴 뒤, 그들의 안전과 삶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던 것이다.

배 대표는 "한국이 생명과 인권을 훼손한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국제 사회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 "정보 부족해 규명 제외"…입양인 "기록 부실, 그 자체로 증거"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이 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해외 입양인 김유리 씨의 사례 발표를 듣고 있다. 2025.03.26.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이 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해외 입양인 김유리 씨의 사례 발표를 듣고 있다. 2025.03.26. [email protected]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해외입양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주장한 367건 중 56건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보 부족'을 이유로 42건은 진실규명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절반 이상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해외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은 1964~1999년 한국에서 해외 11개국으로 입양된 367명이 해외입양 과정에서 서류가 조작돼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조사를 신청한 사건이다.

입양인 단체들은 '입양이 불법적으로 이뤄졌음을 입증하는 문서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인권침해의 증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진실화해위에 신청서를 제출한 단체인 뿌리의집의 공동대표 피터 뮐러(덴마크 입양인)는 지난 10일 "그 기록을 보존할 책임은 입양기관과 대한민국에 있다.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는 부당하다"고 항의했다.

입양인 단체와 당사자들은 "기록 없이 침묵으로 지워진 나머지 피해자들을 외면한 채, 화해를 말할 수는 없다"며 위원회에 조치를 촉구했다.

이들은 ▲367명 전원에 대한 조사결과와 진실규명 답변 제공 ▲2기 위원회 임기 내 모든 사건 결론 ▲필요시 제3기 위원회 설치를 통한 연속 조사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허위 기아신고·양부모 자격심사 부실·대량 송출 구조 등 일부 구조적 문제만 인정할 뿐 이들의 요구에는 침묵하고 있다.

권희정 미혼모아카이빙과권익옹호연구소장은 진실화해위를 겨냥해 "과거 정부와 입양 기관의 잘못된 관행은 인정하면서 일부 입양인의 피해는 보류한다는 건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와 입양인의 싸움에서 빠지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입양인 정체성·생존권 위협…"국가가 방치"

문제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록 비공개가 입양인의 정체성과 생존권을 모두 위협한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죽기 전에 친부모 얼굴 한 번은 봐야겠다며 한국을 찾는 이들이 많다"며 "양부모가 사망하고 나서야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이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년에 접어든 입양인들은 이제 유전 질환과 관련된 병력을 요구하고 있지만 가족이나 국가는 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건강한 삶을 누릴 권리도 침해받고 있다.

송씨 역시 그런 경우다. 송씨는 희귀 유전 질환의 가능성 때문에 부모기록 등이 담긴 모든 자료에 대한 접근을 요구했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배 대표는 "자식이 아파도 유전정보를 주지 않으려는 체면 문화가 남아 있다"며 "개인이 도망가면 국가도 손을 놓는다. 법은 70년 전 그대로고, 건강권에 대한 기본조차 없는 나라가 우리뿐"이라고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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