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 '전동휠', 하늘로 달리라고?

【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공상과학(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산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도심에서 전동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퍼스널 모빌리티란 전기로 구동하는 1인용 이동수단이다. 외발 전동휠, 투휠 보드, 자가평형 이륜차, 전동 킥보드, 전기 자전거, 전동 스쿠터 등 종류도 다양하다.
외발 전동휠은 바퀴 크기가 16인치 정도로 작고 무게도 10㎏ 안팎으로 가벼워 휴대가 편리하다.
투휠 보드는 7~10인치 정도 크기의 바퀴 두 개로 만들어져 외발 전동휠보다 안정적이다.
자가평형 이륜차는 바퀴 크기가 18인치 정도로 크고, 무게가 20㎏ 이상 나갈 정도로 무거우나 균형을 잡기가 가장 쉬워 안정적이다.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 '성장세'
2001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퍼스널 모빌리티는 비싼 가격과 큰 부피, 무거운 중량 등으로 대중화에 실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능 향상과 경량화 등으로 휴대성을 높여 새로운 이동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성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전동 스쿠터의 경우 전기 1㎾h로 100㎞를 달릴 수 있다. 우리나라 일반용 전기요금으로 환산하면 100원 수준이다.
아울러 배기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적이며, 도심 속 극심한 교통체증과 주차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이 같은 장점이 부각되면서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까지 환승 거리를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많아지고 있다.
직장인 최모(30)씨는 "경기 고양시 일산 자택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한 뒤 10㎞가량 떨어진 회사까지 전동 킥보드를 타고 출근한다"며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애매한 거리일 때 유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중국 기업 샤오미는 지난해 10월 세퀘이아캐피털 등과 함께 퍼스널 모빌리티 업체 나인봇에 8000만 달러(약 877억원)를 투자했다.
나인봇은 포브스지가 선정한 '2015 포브스 중국 내 테크놀로지 고속성장기업'에 이름을 올려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신제품 나인봇 미니 프로는 중국 광군절(11월 11일) 당일 매출액 3000위안(54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나인봇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뜨겁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이 지난해 11월 나인봇 100대를 대당 49만9000원에 한정 판매했는데 4시간 만에 모두 팔렸을 정도다.
친환경 정책이 활발한 유럽에서는 이미 전기 이륜차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84억 달러였던 전 세계 전기자전거 시장 규모는 2018년 108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무역투자공사(KOTRA) 해외 비즈니스 정보포털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독일 내 전기 이륜차 수는 약 1만8000대로 전기자동차보다 많은 수요를 보였다.
다만,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아직 완전히 자리 잡은 상황이 아니어서 여러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속도 규제, 안전 법규, 보험 제도 미비 등이 꼽힌다.
◇차도와 인도 중 어느 길로 다녀야 하나 '혼선'
퍼스널 모빌리티 운전자들은 자동차 도로와 자전거 도로, 인도 중 어느 길로 다녀야 할지 명확한 규정을 몰라 혼선을 빚고 있다. 경찰청과 국토교통부의 유권해석이 달라서다.
먼저 경찰청과 교통안전공단 도로교통안전처는 바퀴가 두 개인 전동킥보드와 전동자전거 등 퍼스널 모빌리티를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에는 원동기장치자전거란 '자동차관리법' 제3조에 따른 이륜자동차 가운데 배기량 125cc 이하의 이륜자동차 및 배기량 50cc 미만(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경우에는 정격출력 0.59kW 미만)의 원동기를 단 차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퍼스널 모빌리티는 오토바이와 마찬가지로 차도에서만 탈 수 있다. 자전거 도로나 인도에서의 운행은 금지된다.
만약 퍼스널 모빌리티 운전자가 인도에서 보행자와 부딪힐 경우 도로교통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자동차가 인도를 침범해 사람을 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고 시속이 20~50㎞에 불과한 퍼스널 모빌리티를 차도에서 주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도로 정체를 야기할 수 있고, 사고 위험성도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씨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도로로 나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며 "현행법상 인도가 안 되면 최소한 자전거 도로에서는 탈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경찰청과 달리 국토교통부는 퍼스널 모빌리티가 차도를 달려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자동차관리법'상 자동차는 자기인증(안전기준에 적합한지 제작자 스스로 인증하고 판매하는 제도)을 거쳐야 하나 퍼스널 모빌리티는 인증 범주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퍼스널 모빌리티는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도로 위 무법자가 되는 셈이다.
반면 외국의 경우, 급성장 중인 퍼스널 모빌리티 산업에 발맞춰 각종 안전 규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퍼스널 모빌리티를 저속 차량(Low Speed Vehicle)으로 분류해 지정차로에서만 통행하도록 하고, 면허·보험·차량 등록 등의 다양한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유럽 역시 퍼스널 모빌리티를 2륜 모터 자전거, 3륜 모터 자전거, 삼륜차, 가벼운 4륜차 등으로 세분화해 법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퍼스널 모빌리티의 승차정원과 운행 도로지정 등의 제도를 시행 중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와 두바이 지방정부도 지난해 10월 전동휠에 대한 엄격한 규제 방침을 세웠다. 아부다비는 공원을 제외한 길에서, 두바이는 쇼핑몰에서 전동휠을 타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골절·뇌진탕 등 사고 급증, 안전대책은 미흡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상 퍼스널 모빌리티 운전자는 만16세 이상 취득 가능한 제2종 운전면허인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를 취득하고, 차량 등록을 해야 한다. 주행 시 헬멧 등 인명보호 장구를 착용해야 하며, 음주운전을 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경찰이 단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경찰이 수시로 순찰하는 한강 둔치나 공원 등지를 둘러보면 보호 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체 곡예라도 하듯 인파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 2호선과 공항철도 홍대입구역에서는 서울 시내 지하철역 중 가장 긴 환승 거리(약 380m)를 편리하게 오가겠다며 역사 안에서 퍼스널 모빌리티로 이동하는 사람들까지 있지만, 지하철경찰대나 역무원이 이를 제지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동휠을 타는 사람들이 늘면서 사고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안전대책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전국 관광지나 공원 내 전동휠 관련 사고는 총 31건이다. 2013년 3건에서 지난해 26건으로 급증했다.
사고로 인한 부상 정도는 타박상과 찰과상 등 가벼운 부상이 14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골절이나 뇌진탕 등 심각한 부상도 각각 9건과 7건에 달했다.
그런데도 관광지, 공원 등에서 영업 중인 전동휠 대여점 23개 업체를 대상으로 대여 서비스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운전면허증을 확인한 뒤 소지자에 한해 대여하는 곳은 1개 업체에 불과했다.
특히 12개 업체는 나이나 신장 등 대여 제한 기준도 없어 어린이도 쉽게 전동휠을 빌릴 수 있었다. 나머지 10개 업체에서도 부모와 동행한 어린이에게 별다른 제약없이 전동휠을 대여해주고 있었다.
보험에 가입한 업체도 4곳뿐이었다. 그마저도 기기 결함 등에 대해서만 보상하는 영업배상책임보험으로 소비자가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내면 경제적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컸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전동휠 운전자와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전동휠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운전자격, 주행 가능 도로, 주행속도 제한 등 운행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대여서비스에 대한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전동휠의 차종 재분류 및 운행기준 마련, 전동휠 대여 사업자의 준수사항 마련 및 계도 등을 관계기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품 결함 입증, '블랙박스'라도 달아야 하나
유명 안무가 곽용근(47) 더 댄스 대표는 지난해 9월19일 전동 킥보드를 타고 인도에서 자전거도로로 진입하던 중 5~10㎝ 턱에 걸려 타이어가 펑크나 다음날 오전 구매처에서 새로운 타이어 튜브로 교환했다.
하지만 당일 오후 자전거도로를 주행하던 중 또다시 앞바퀴가 펑크났다. 이 사고로 곽 대표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져 왼쪽 팔목 뼈가 금이 가고 오른쪽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곽 대표는 "앞바퀴가 주저앉은 상태에서 뒷바퀴는 계속 가속했다"며 "핸들이 전혀 조향이 안 돼 중심을 잃고 몸이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사고 상황을 판매처에 설명했다.
그러나 판매처와 본사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펑크는 제품 결함이 아니다"였다. 그는 "업체 측이 '애석하다'는 입장만 표명할 뿐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더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국내로 수입되는 전동 킥보드의 경우 기기 결함이나 안전성 등을 검증받지 않은 제품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주행 중 제품에서 결함이 발견되더라도 곽씨 경우처럼 피해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소비자가 직접 결함을 입증하려면 블랙박스라도 달아야 할 판이다.
고가인 전동 킥보드가 인기를 끌자 직접 만들어 타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손수 제작한 킥보드의 사진을 올리고, 제작 방법 등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업체 관계자는 "폭발 위험이 있는 리튬배터리를 무분별하게 조립하거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전동모터를 개조하는 등의 행위는 본인뿐 아니라 보행자 안전까지 위협하는 것"이라며 "안전 인증을 받은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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