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이 2주 합숙…공무원시험 출제현장 가보니
기기 반납하고 2주 격리…경조사도 보안요원 동행
10평에 침대 4개…공간 부족에 당구장서 잠자기도
수백명 동시 합숙…칠판에 "집에 갈 결심" 낙서도
세종에 국가채용센터 건립…"공공부문 채용 지원"

지난 23일 찾은 과천 국가고시센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안요원의 안내에 따라 휴대전화를 끄고 보관함에 넣어야 했다. 국가보안시설 '다'급인 이곳은 보안을 위해 모든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된다. 취재진도 휴대폰을 반납하고서야 출입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과천 국가고시센터는 각종 공무원시험 문제가 출제되는 시설로, 2005년 준공됐다. 5·7·9급 국가직 시험을 포함해 매년 21종, 221개 과목의 문제가 이곳에서 출제된다. 작년 한 해 동안 국가고시센터를 다녀간 인원만 4만1621명에 이른다.
시험 출제가 이뤄지는 공간답게 건물은 철통 보안 속에 관리되고 있었다. 복도의 모든 창문은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불투명하게 제작돼있었고, 창틀에는 묵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자물쇠 위에는 붉은 글씨로 '관계자 외 제거를 금지한다'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부착돼있었다. 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전자기기는 모두 반입이 금지돼, 건물에 비치된 시계는 전부 아날로그 형태였다.


문항을 새로 제작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달리, 공무원 시험은 미리 제작된 문제은행에서 문항을 선별해 다듬는 방식으로 출제된다. 인사처는 이 과정에 참여하는 교수들을 '선정위원'이라 부르는데, 시험 기간이 되면 선정위원들은 센터에 입소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주일 간의 합숙생활을 시작한다.
선정위원과 별도로 문항의 난이도를 검토하는 '재검토요원'도 합숙에 참여한다. 이들은 전년도 시험 성적 우수자 중에서 선발된다. 여기에 식사·청소 인력과 운영 직원까지 합치면 시험마다 많게는 300명이 머문다. 최근 치러진 9급 국가직 공채 필기시험 당시에는 총 253명이 이곳에서 합숙했다.

합숙을 시작하면 시험 당일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집안에 경조사라도 생기면 보안요원을 대동해 잠시 외출할 수 있지만, 화장실을 갈 때도 보안요원이 동행한다. 외부와의 연락도 철저하게 차단된다. 인터넷은 보안요원의 감시 하에 지정된 공간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사용 중인 화면은 상단에 설치된 10여대의 대형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외부 사이트 접속은 제한돼있고 자료 검색 등 시험 출제에 필요한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
전자기기 사용이 제한된 환경이다 보니 센터에는 약 1만4000권의 책이 비치돼있다. 출제 참고용 전공 서적부터 합숙의 무료함을 달래줄 무협 소설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외부 활동이 불가능한 위원들을 위해 당구장과 탁구장, 헬스장 등 여가 공간도 마련돼있었다. 위원들은 출제 업무가 끝나면 책을 읽거나 운동, 당구 등으로 남은 격리 기간을 보낸다고 한다.
인사처 관계자는 "합숙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며 "전반기에는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인쇄 작업이 시작되는 후반기부터는 자유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보안을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시험일까지 센터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고시센터는 2005년 준공돼 현재 20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지만, 시설이 낡고 오래된 데다 공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숙소는 2~4인실이 대부분인데, 이날 직접 방문해본 객실은 4인실 기준 약 33㎡(10평) 규모였다. 침대 4개가 빽빽하게 들어차있어 성인 4명이 생활하기에는 공간이 협소해 보였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침대마다 커튼을 설치해놓긴 했지만, 병실 같은 분위기가 났다.
4인실을 1~2명이 나눠 쓰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인원 수에 맞춰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험 기간마다 최대 300명이 합숙하는데 전체 객실 수는 146실에 불과해, 모든 객실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합숙 기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2010년 122일이던 연간 합숙일은 현재 189일로 늘었다. 긴 기간 합숙의 답답함을 보여주듯 센터 안에 설치된 화이트보드에는 누가 썼을지 모를 "집에 갈 결심 D-1"이라는 문구가 적혀있기도 했다.
인사처 관계자는 "2017년에는 방이 부족해 직원들이 당구장에 난방 매트를 깔고 자야 했다"며 "합숙인원이 많을 때는 세탁실이나 휴게공간을 이용할 때도 대기가 길다"고 말했다.
숙소가 포화상태일 때가 많아 야외 산책도 요일별로 보행 방향을 정해놨다. 홀수날(월·수·금·일요일)에는 시계 반대 방향, 짝수날(화·목·토요일)에는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이처럼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선정위원을 고사하는 교수들이 많다고 한다. 인사처 관계자는 "길게는 2주 넘게 합숙해야 하는데 시설도 오래돼 선정위원 섭외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국가고시센터와 함께 방문한 역량평가센터와 중앙선발시험위원회, 면점공간 등도 대부분 오래 전 지어진 건물을 활용하고 있었다. 역량평가센터는 고위공무원단·과장급 후보자의 역량평가를 실시하는 공간으로, 1980년대에 준공된 건물을 사용 중이다.
개방형 직위 선발을 실시하는 중앙선발시험위원회 사무실과 5·7급 공채 면접공간도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데, 시설이 전반적으로 오래된 상태였다. 역량평가센터에서는 3년 전 평가실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고, 면접공간도 비가 올 때 누수가 발생해 수시로 보수 작업을 한다고 한다.

인사처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세종에 '국가채용센터'를 새로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종시 금강 인근 약 3만㎡(9000평) 부지에 과천 시설의 2배 규모로 조성되며 총사업비 1387억원이 투입된다. 지난 3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확정됐고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오송역에서 BRT를 이용하면 약 20분 내외로 이동할 수 있다.
현재는 출제 시설과 면접·역량평가·채점시설이 분산돼있지만, 새로 지어질 센터는 공무원 채용업무 전 과정이 한곳에서 이뤄진다. 또 지금보다 보안을 강화하고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될 예정이라고 한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인사처는 다른 기관의 채용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현재도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시험 출제나 역량평가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지만, 과천 시설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거절할 수밖에 없다"며 "세종에 채용센터가 마련되면모든 공공부문의 채용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사처는 내년도 예산에 설계비와 토지 매입비 등을 반영해 본격적인 건립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세종 국가채용센터가 완공되면 현재 사용 중인 과천 역량평가센터 건물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반환되고, 과천 국가고시센터 건물은 국유재산을 총괄하는 부처인 재정경제부로 인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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